[밀물썰물] 스윙 보트
"우리나라가 세계 최대 부국이라며 어째서 살기 힘든 사람이 이렇게 많은 겁니까?" 케빈 코스트너 주연 영화 '스윙 보트(Swing Vote)'의 주인공, 별다른 직업 없이 근근이 살아가는 버드 존슨이 딸 덕분에 투표의 중요성을 알게 된 후, 이웃의 편지를 통해 양당 대선 후보를 향해 던진 말이다. 선거 시스템 착오로 버드에게 주어진 재투표 기회. 버드의 표는 박빙의 선거전을 결정짓는 한 표였다. 공화·민주 양당 캠프는 버드만을 위한 선거 캠페인을 벌이고 광고도 제작한다. 버드의 마음을 잡기 위해 보수와 진보라는 두 당의 전통적인 가치도 버린다.
스윙 보트는 부동표, 스윙 보터(swing voter)는 부동층 유권자다. 지지 정당이나 후보를 결정하지 못해 플로팅 보터(floating voter)라고도 한다. 미국에서는 스윙 보트가 많은 주를 스윙 스테이트(경합주)라 부른다. 스윙 보트는 이념적으로 중도 성향이 많다. 그러나 유권자의 이념을 편의상 보수·진보·중도라고 구분할 경우,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닌, 아니면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혹은 보수와 진보를 번갈아 지지하는 그런 유권자도 있다.
조지 레이코프는 이를 중도가 아닌, 이중개념주의자로 정리했다. 이중개념주의자는 정치적 사고를 하면서 두 가지 다른 도덕 체계를 함께 사용한다. 인간 두뇌에는 진보주의와 보수주의라는 서로 배타적인 두 세계관이 나란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보수적이면서도 사회적으로 진보적이거나, 진보적인 국내 정책과 보수적인 외교 정책을 동시에 지지하고, 시장에 대해서는 보수적이지만 시민적 자유에 대해서는 진보적 입장을 취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레이코프는 말한다.
부분적으로 보수, 부분적으로 진보인 사람, 이중개념으로 선택에 혼란을 겪는 경우 표는 떠다닌다. 부동층에는 자신의 선택을 숨기는 경우도 포함돼 있다. 베일 보터(veil voter), 숨은 유권자다. 자신의 선택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이다. 부동층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유권자 한 표, 한 표가 모두 '버드의 스윙 보트', 캐스팅 보트라는 사실이다. 열흘 남짓 남은 대선, 보수이건 진보이건 이중개념주의자이건, 버드처럼 후보자와 1 대 1로 마주하고 있다는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모두가 한 가지 질문을 품고 투표장으로 가는 건 어떨까. 이춘우 편집위원 bomb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