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주의 고전과 세태] 17. 拔茅茹 以其彙 征吉(발모여 이기휘 정길)
띠풀을 뽑듯이 함께 가야 길하다 <주역>
주역 64괘 중 태괘(泰卦·)는 가장 이상적인 괘로 알려져 있다. 하늘() 위에 땅()을 올려 놓은 모양이다. 물론 땅이 위에 있고 하늘이 아래에 있는 구도는 자연의 형상은 아니다. 그러나 바로 이 점이 화합과 태평의 가장 중요한 조건임을 태괘는 상징한다. 하늘의 기운은 위로 향하고 땅의 기운은 아래로 향하기 때문에 서로 만난다는 이치이다. 서로 다가가는 마음이다.
태괘의 괘사(괘의 뜻풀이)는 다음과 같다. "작은 것이 가고 큰 것이 온다. 길하고 형통하다." 뭔가 꽉 막혀 답답하던 일이 확 트이며 시원스럽게 펼쳐지는 형국이다. 한 국가를 생각해 보면 혁명이나 정변 후 새로운 세상이 활짝 열린 국면이 연상된다. 사실 주역의 발상지인 주(周)는 역성혁명으로 건국된 나라였다.
태괘는 64괘 중 가장 이상적
화합과 태평의 상징
혁명 후 새 국가 성공하려면
띠풀처럼 여럿이 함께 가야
'장미 대선' 후 새 대통령
포용력 발휘 대중노선을
태괘의 효사(爻辭·효의 뜻풀이)가 의미심장하다. 초효부터 보자. '拔茅茹 以其彙 征吉(발모여 이기휘 정길)', 즉 '띠풀을 뽑듯이 함께 가야 길하다'는 뜻. 띠풀은 잔디나 고구마처럼 뿌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풀이다. 한 포기를 뽑으려 하면 연결되어 있는 줄기가 함께 뽑힌다. 모든 시작은 '여럿이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국가 창건이든, 회사 설립이든, 또는 전위조직의 건설이든, 많은 사람들의 중의를 결집해서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로 읽힌다.(신영복 <강의> 참조)
제2효의 효사도 비슷한 맥락이다. '멀리 있는 사람도 포용하고 맨발로 황하를 건너는 사람도 포용하고, 멀리하거나 버리지 않으며 붕당이 없으면 중도를 행함에 짝을 얻으리라.' 이 효는 시간적으로 아직 초기에 해당한다. 세를 계속해 불려 나가려면 능력이 뛰어나지 않은 사람도 받아들이며, 과단성을 잃지 말아야 하며, 비주류도 멀리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붕당이 없이 항상 중용의 정도를 행하기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우리나라는 지난겨울 '촛불혁명'에 이어 5월 '장미대선'을 눈앞에 두고 있다. 5월 9일 이후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 새로운 세상이 활짝 열릴 것이라는 희망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벌써부터 새 대통령은 '승자의 저주'에 걸려 후환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없지 않다. 국내외적 상황이 너무나 엄혹한 시기에 취임해야 하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악조건 속에서 국정을 시작해야 할 게 분명하다.
새 대통령이 희망의 시대를 열어젖히기 위해서는 띠풀을 뽑듯이 떨기로 함께 나아가는 길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포용력을 발휘하고 대중노선을 견지해야 함을 태괘는 넌지시 일깨우고 있다.
논설위원 hoho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