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통푸통 대만 여행기 상. 타이베이] 눈도 입도 빈틈없이 즐겁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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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유럽의 어느 항구를 보는 듯했다. 타이베이 MRT 단수이선으로 연결되는 '단수이'는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촬영지일 뿐 아니라 로맨틱한 분위기로 사랑의 항구 도시로 불리기도 한다. 단수이의 아름다운 석양은 만나지 못했지만 위런마터우를 천천히 걸으면서 마음만은 넉넉해졌다.

전 세계 26개국에서 온 28명의 기자와 웃고, 떠드는 사이 엿새라는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서먹서먹하던 첫 만남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그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고, 또 생각보다 짧았다. 개인적으론 첫 대만 여행이어서 그 자체도 신선했지만 같은 일을 하는 다른 나라, 다른 인종, 다른 나이대의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돌아본 대만이어서 더욱더 기억에 남았다. 그들과 함께한 '푸통푸통(두근두근의 대만어)' 대만 여행기를 두 번에 나눠서 싣는다. 편의상 첫 편엔 타이베이, 다음 편에선 중부 타이중 시와 동부 이란 현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이번 방문은 대만 정부(외교부) 초청으로 이뤄졌다.

일몰 명소로 유명한
단수이의 위런마터우
바다 보며 걷기에 딱

세계적인 고궁박물원
소장품 69만 6000여 점
취옥백채·영아침 등 유명

'타이베이 101' 빌딩의
실내·외 전망대에선
타이베이 야경 한눈에

딘타이펑의 샤오룽바오
야시장의 길거리 음식 등
먹는 즐거움도 가득

타이베이 MRT 타고 단수이로


비슷한 시간대에 타오위안 공항에 도착한 안드레이 야쉴라브스키 러시아 기자를 만나 숙소인 '타이베이 그랜드 호텔'로 이동했다. 그곳에선 다시 필리핀 일본 라트비아 핀란드에서 온 기자와 합류했고, 타이베이 근교 신베이의 항구 도시 단수이(淡水) 위런마터우(漁人碼頭)로 가기 위해 타이베이 지하철 MRT를 탔다. 버스와 지하철 창 너머로 보이는 타이베이 시내 풍경은 어딘지 모르게 홍콩 뒷골목 같기도, 일본스럽기도 했다. 일본산 승용차는 물론이고 일본 브랜드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인기 화장품은 단연 한국 제품. 수많은 오토바이 행렬과 곳곳에 보이는 오토바이 전용 주차장도 대만의 일상 풍경 중 하나였다.

종점인 단수이역에 내려서 개찰구를 통과하는데 '그룹 탑승객' 출구 표시가 보인다. 지하철에 '웬 그룹 손님' 싶으면서도 세심한 관광 인프라에 놀랐다. MRT 승강장의 승객 대기선도 특이했다. 앞사람과 부딪치지 않도록 '일(一)자'가 아닌 '기역 자(ㄱ)'로 표시됐다. MRT 리플렛은 중국어, 영어, 일본어뿐 아니라 한국어도 있다.

날이 흐려서 단수이가 자랑하는 예쁜 석양은 보지 못했다. 다만 '연인의 다리'로 불리는 '칭런차오(情人橋)'를 건너서 나무 덱 위를 걸었다. 어슬렁어슬렁 바닷바람을 쐬며 걷는 기분도 나쁘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의 피셔맨스 워프나 시애틀 워터프런트가 부럽지 않았다. 부산의 북항이 본격적으로 열린다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했다.

고궁박물원과 오르세미술관의 만남

대만 국립고궁박물원 전경
다음 날은 대만이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국립고궁박물원에 갔다. 이날은 고궁박물원 제2전시구역 도서문헌관 갤러리에서 열린 '프랑스 오르세미술관 개관 30주년 기념 특별전-19세기 미학의 세기' 개막 기자회견을 겸했다. 대만 기자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온 기자도 함께했으니 기자회견장은 후끈 달아올랐다. 린정이 고궁박물원장은 "아시아에서는 한국과 대만만 이 전시회를 유치했다"고 밝혔고, 오르세미술관 자비에 레 수석 큐레이터는 "한국 전시보다 규모는 작지만 종래 보기 드문 작품 등 70점의 회화를 선보인다"고 설명했다. 대만 전시 포스터에도 등장한 빈센트 반 고흐의 '낮잠'(혹은 '정오의 휴식'이라고도 함)을 비롯해 장 프랑수아 밀레의 '이삭줍기',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소녀들', 폴 고갱의 '브르타뉴의 여인들' 등이 포함됐다. 한국 전시 때 놓친 미술 애호가라면 꼭 한번 들러볼 만하다. 전시는 7월 24일까지. 
오르세미술관 특별전으로 소개되는 빈센트 반 고흐의 `낮잠`
제1전시구역(본관)으로 넘어갔다. 총 69만 6474점(3월 현재)에 이르는 방대한 소장품을 한꺼번에 내놓을 순 없기 때문에 유명한 수십 점을 제외하고는 3~6개월마다 전시품을 교체한다니 8~10년은 찾아야 모든 유물을 감상할 수 있을 정도다. 이날 우리 일행을 안내한 도슨트는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 꼭 봐야 할 것들만 설명한다면서, 302호실에서 전시 중인 '취옥백채(翠玉白菜·배추 모양의 옥 조각품)'를 비롯, 3대에 걸쳐 상아를 깎아 만든 '상아투화운룡문투구', 북송 여요(汝窯)의 연꽃 모양 청자 대접 '연화식온완'과 정요(定窯)의 백자 어린이 모양 베개 '영아침', 당나라의 미인상을 엿볼 수 있는 '회도가채사녀용(灰陶加彩仕女俑)' 등을 소개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고궁박물원이 왜 '중화(中華) 문화의 보고'라고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백팩은 못 들고 가지만 플래시 없는 사진 촬영은 가능하다. 
인기 소장품 `취옥백채`
타이베이 랜드마크 '타이베이101'

지상 101층 지하 5층 규모의 타이베이 랜드마크 '타이베이101'에도 올랐다. 5층 매표소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더니 89층 전망대까지 37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야외 전망대가 있는 91층까지는 계단을 이용하는데 철망 때문에 사진 촬영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바람의 위력은 제대로 만끽했고, 508m 높이의 첨탑도 올려다볼 수 있었다. 
인피니티 스카이 공간에서 사진 찍기
개인적으로는 88층과 89층 유리창을 통해 360도를 조망할 수 있도록 해 놓은 실내 전망대가 더 짜릿했다. 특히 교묘한 설계를 통해 전망대 천장과 바닥 사이에 타이베이 시내 전경이 비쳐 마치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인피니티 스카이(INFINITY SKY)'에서의 사진 촬영은 '강추'. 마천루의 평형을 잡아주는 장치 '윈드 댐퍼(WIND DAMPER)'도 꼭 눈으로 확인하자. 
윈드 댐퍼
해지기 직전에 방문한 덕분에 황홀한 야경까지도 동시에 누릴 수 있었다. 전망대 개장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마지막 입장권 판매는 오후 9시 15분). 35층에 위치한 스타벅스는 1인당 최소 주문 금액과 하루 전 예약이 필수지만 전망대 대신 택하는 이들도 있다고.
`타이베이101` 실내전망대에서 바라본 타이베이 시내 야경
중정기념당과 역사 바로 세우기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이었다. 그날 오전엔 대만 초대 총통을 지낸 장제스(蔣介石·1887~1975)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국립중정(中正·장제스의 본명)기념당에 들렀다. 대만에 머문 엿새 동안 대부분 날이 좋았는데 그날따라 비가 내렸다. 대만의 일상에서 빠지지 않는 게 비라고 하더니 마지막 날에야 미리 챙겨간 우산이 제 몫을 했다.
타이베이 장제스와 근위병.


하여튼, 우중이었지만 중정기념당은 외국인 못지않게 자국민으로 붐볐다. 알려졌다시피 장제스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국부 쑨원(孫文)의 뜻을 계승해 중화민국(대만)을 반석에 올려놓은 훌륭한 지도자라고 떠받드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1947년 국민당 정권에 의한 원주민 학살 사건인 '2·28사건'의 원흉으로 지탄받기도 한다. 차이잉원(蔡英文) 총통 취임과 함께 민진당이 다시 대만 정권을 넘겨받으면서 '2·28사건'의 진상 규명 등 '역사 바로 세우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재차 힘을 얻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장제스 동상 앞에서 열리는 근위병 교대식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고, 중정기념당의 차후 용도도 여전히 확정되지 않은 듯했다. 중정기념당 안에는 우체국도 있다. 급하게 써 보낸 우편엽서였는데 뒤늦게 한국에서 받으니 다시 여행지 기분이 났다.

원조의 힘 딘타이펑과 야시장의 매력

대만 여행에서 빠트릴 수 없는 게 있다면 바로 음식이다. 타이베이에서 먹은 음식 가운데 가장 잊히지 않는 것이 '샤오룽바오(小籠包·작은 대나무 찜기에 쪄낸 중국식 만두)'다. 14개국에 119개 매장을 내고 있는, 융캉제에 위치한 '딘타이펑' 본점을 찾았다. 서빙하는 직원들도 중국어 외에 한국어, 영어, 일본어, 스페인어가 가능했다. 본점 하루 근무자만 80명. 음식 맛도 보기 전에 서비스에 압도되고 말았다.

샤오룽바오가 나왔다. 직원이 알려준 대로, 일단 숟가락 위에 샤오룽바오를 얹고, 간장과 식초를 1 대 3 비율로 섞은 소스에 채 썬 생강을 찍어 올린 뒤 만두피를 살짝 터뜨려서 나온 육즙부터 후루룩 마시고 나머지를 입안에 통째로 털어 넣었다. 부드러우면서도 담백했다. 홍콩 등 몇 곳에서 맛있다는 샤오룽바오를 먹어본 적이 있지만 딘타이펑의 그것은 확실히 달랐다. 균형 잡힌 맛이라고 할까! 59년 전통을 자랑하는 딘타이펑만의 자부심으로 여겨졌다. 샤오룽바오 소는 돼지고기 외에도 닭고기, 새우, 게내장 등으로 다양했다. 디저트로 나온 초콜릿 샤오룽바오를 한 입 깨물곤 탄성을 내뱉었다. 
초콜릿 샤오룽바오
싸고 맛있는 음식을 다양하게 맛볼 수 있는 야시장 투어도 대만을 찾는 즐거움 중 하나다. 부산의 부평야시장과 뭐가 다를까 싶어서 처음엔 썩 내키지 않았으나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인도네시아 핀란드 일본 러시아 기자들과 한 번, 쿠웨이트 파나마 멕시코 페루 엘살바도르 파라과이 브라질 기자들 일행에 섞여서 또 하루, 마지막엔 그리스 미국 벨리즈 세인트키츠네비스 슬로바키아 필리핀 칠레 기자와 합류하면서 거의 밤마다 랴오허제와 스린 야시장을 쏘다녔다. 밤 10시가 넘도록 불야성이다. 구경만으로도 신났다. '처우더우푸(臭豆腐·취두부)'의 역한 냄새는 익숙해지기 힘들었지만 석가모니 머리를 닮은 과일 '스자(釋迦)'는 지금 생각해도 꿀맛이었다. 

타이베이 스린야시장 과일 노점상.

야시장의 활기는 타이중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중국보다 조용하면서도 홍콩보다 정감 있고 편안한 도시 타이베이를 떠나 타이중과 이란으로 향했다.

대만 타이베이/글·사진=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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