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수선화, 봄날의 지혜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마저 사로잡을 만큼 잘생긴 미소년. 그러나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았다. 운명은, 물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움에 반해 물속에 빠져 죽는 것. 그 자리에 꽃이 피었다. 꽃이 된 소년의 이름은 나르키소스(Narcissus), 그 꽃은 수선화. 그리스 신화 이야기다.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인 수선화는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이르면 겨울에, 늦게는 5월까지 꽃을 피우는 봄꽃이다. '물의 선녀'를 뜻하는 수선화(水仙花)는 물가에서 피는 모습이 청초하고 아름다워 붙여진 이름. 중국의 삼국지에 초선과 견희, 두 명의 절세미인이 등장한다. 위나라 조조의 아들 조식이 형 조비의 여인인 견희를 사모해 '낙신부(洛神賦)'라는 애절한 시를 썼는데, 여기 나온 구절이 인용되면서 수선화는 '능파선(凌波仙)'이라는 또 하나의 우아한 이름을 얻었다. '물결을 타는 선녀'라는 의미다. 추사 김정희는 10여 년간 제주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자생 수선화를 무척 아꼈다. "이 고장 사람들은 이 꽃이 귀한 줄 몰라 소와 말에게 먹이고 발로 밟아 버리기도 한다"며 한탄했다는 이야기가 '완당집'에 전해진다. 서귀포에서 위리안치(집 주위에 울타리를 쳐 밖으로 못 나오게 하는 유배형)를 살아야 했던 추사에게 수선화는 귀양살이의 아픔을 나눈 고결한 벗이었다.
수선화에서 파생한 것이 나르시시즘(Narcissism·자기애)이다. 누구나 갖고 있지만, 인간의 성장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감정 중 하나. 프로이트는 이를 정신분석학 개념으로 확립했다. "리비도가 자신에게 향해진 상태"를 가리키는 나르시시즘의 가장 큰 특징은 근거 없이 자신이 옳다, 선하다고 느끼는 의식. 때론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전능감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나르시시즘에는 '정상적인 자기애'와 '병리적 자기애'가 있다. 자신에 대한 거짓 이미지를 깨고 내면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인정하며 그 자체로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건강하고 진정한 자기애다. 수선화 피는 봄날, 우리는 나르시시즘의 더없는 난장 무대를 구경 중이다. 대선을 코앞에 둔 후보들이 상대를 깎아내리고 잘난 자신만을 펼쳐 보이느라 여념이 없다. 편협한 나르시시즘의 퇴행적 환상에서 벗어나 성장의 발판이 되는 진짜 자기애를 보여 줄 지도자를 가려내는 눈. 이번 선거를 잘 치르는 또 다른 지혜다. 김건수 편집부 부장 kswoo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