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식의 문화 톺아보기] 9. 키스와이어센터, 그리고 F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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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말을 걸다… 시민과 문화·건축의 행복한 만남

F1963에서 만나는 대숲 길.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전시나 공연을 보며 머리를 식힐 수 있는 곳, 머리가 복잡할 때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곳, 이런 곳이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수영구 망미동 F1963(옛 고려제강 수영공장)이 부산 시민에게 그런 공간으로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부산의 보석 같은 존재로, 한걸음 한걸음씩.

무엇보다 이곳은 부산에서 가장 '핫(hot)'한 곳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2016부산비엔날레 전시 공간으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해 이젠 주말이면 1000명이 넘는 발길이 머문다. 문화마켓 '마켓움(market ooom)'의 잇단 개최와 20세기 최고의 화가 '파블로 피카소' 부산전까지. 지난주엔 이곳에서 부산국제즉흥춤축제로 또 한 번 시끌벅적했더랬다.

고려제강 관계자는 "부산비엔날레 전 이후 공간이 알려지면서 최근 대관 문의가 부쩍 많아졌다"고 소식을 전했다.

이곳엔 파블로 피카소 전(6월 6일까지)이 한창이다. 피카소가 생전에 남긴 작품은 5만여 점. 그중엔 도자기 작품도 2000여 점이 넘는다고 하는데, 이번 부산전에선 이 도자기 작품이 단연 돋보인다. 피카소는 도자기 위에 바로 그림을 그렸다. 마치 캔버스나 판화의 원판처럼 도자기 접시를 활용했다. 또 볼록한 도자기를 볼이 통통한 사람의 얼굴 모습으로, 우아한 여인의 신체를 병 모양으로 바꾸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도자기만이 아니다. 유화, 판화까지 무려 390여 점에 이른다. 피카소의 작품을 통해 그의 삶과 예술의 보폭을 느껴볼 수 있는 기회다. 

돌, 물, 나무가 만들어낸 키스와이어센터 내 쉼터.
작품 감상만 끝내고 이 공간을 나오기는 섭섭하다. 잠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것도 괜찮다.

주변으로 발길을 확장하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폐수처리장을 꾸며 수생식물을 심은 공간도 보인다. 줄기가 검은색을 띠는 오죽(烏竹)이 자라고 있다. F1963 입구 쪽으로 나오면 저만치 대숲 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댓잎의 칼칼한 잎사귀들이 바람에 흔들려 마치 영혼의 노래를 부르는 듯하다. 대숲 속에서 잠시 명상에 잠겨도 좋다. '침묵의 소리 없는 소리'를 느낄지도 모른다. 도심 한가운데서 느껴보는 '맑은 침묵' 말이다.

대숲에 놓여있는 디딤돌과 벤치는 눈길을 사로잡는다. 디딤돌은 마치 대궐 마당에 깔았던 박석(薄石) 같다. 폭우가 내릴 때 물이 한꺼번에 차지 않고 박석 사이로 흘러나가게 표면을 울퉁불퉁하게 만들었듯이 디딤돌 표면도 닮았다. 고려제강 측은 디딤돌과 벤치 모두 폐공장의 바닥재와 폐기물을 재활용한 것이라고 했다.

대숲에서 잠시 명상에 젖었다면, 발길을 고려제강 기념관인 키스와이어센터쪽으로 돌려보자. 이곳은 사전 예약을 해야 방문객을 맞는다. 공휴일, 일요일은 휴관이다. 관람 일정은 www.kiswiremuseum.com을 통해 확인하면 된다. 원하는 관람 날짜를 선택해 예약하면 된다. 벌써 마감된 날도 있다. 이곳은 하루 세 번 방문객을 맞는다. 입소문이 나 건축, 디자인, 인테리어 관련 전공자와 지역 주민들이 많이 찾는다.

키스와이어센터는 2014년 부산다운건축상 대상을 받았다. 설계는 조병수 건축가가 했다. 센터 건물은 와이어 박물관, 기업 홍보관, 기업 연수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기둥이나 보 없이 28개의 와이어만으로 지붕이 지탱되도록 설계된 게 특징이다.

건물에 들어서기 전 야외 공연장이 먼저 관람객을 맞는다. 시선을 건물 안으로 돌리면, 돌 물 나무가 만들어내는 쉼터를 만난다. 복도를 따라가면 왼편에 지붕을 떠받치는 와이어도 볼 수 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키스와이어센터의 하이라이트, 나선형 다리를 만난다. 왜 이 건물이 대상을 받았는지 그 이유를 대충이나마 짐작할 수 있는 곳이다. 나선형 다리가 끝나는 지점, 문을 열자 수(水)정원이 관람객을 반긴다. 옥상 정원도 있다.

흔히 '공간이 말을 건다'는 얘기를 한다. F1963, 키스와이어센터가 그렇다면 과장일까? 전시·공연도 보고, 색다른 건축까지 감상할 수 있다면 일거양득이 될 터이다. 한번 나들이 어떨까? 글·사진=정달식 기자 do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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