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성범죄 의식 수준 '제자리'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농담인데 뭘…" 성희롱 피해자는 '냉가슴'

"뭐 하세요, 지금?" "뭐 하느냐고? 고추 만졌어." 지난달 26일 방영된 KBS1 '전국노래자랑'의 한 장면. 진행자 송해(90) 씨가 대뜸 노래를 부른 남자아이(9)를 돌려세우더니 아랫도리 근처로 손을 대 성기를 만지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그 뒤 '아이 성기를 만지는 시대는 지났다'는 의견과 '웃어 넘길 수 있는 행동'이라는 의견이 방송 게시판에 들끓었다. 결국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지난 12일 '권고' 조처를 내렸다.

성적 수치심 주는 언행들
성범죄 의식 높아져 이슈화

외모 평가·음담패설 등
직장인 절반 "심각한 수준"

■"각박하다" vs "시대가 바뀌었다"


최근 송해 씨의 방송 논란과 부산 해운대구청 고위 간부의 '음담패설 단체 메시지'사건(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본보 13일 자 11면 보도)은 성희롱과 성추행을 바라보는 양분된 시각을 보여 준다. 성범죄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면서, 지금까지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여겨졌던 언행에도 더욱 엄격한 기준을 세우고 조심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반면 '단순한 농담으로 한 발언이었다'며 가해자로 거론되는 것조차 억울해하는 불감증도 여전히 팽배하다.

실제로 무심코 한 언행들이 성희롱으로 연결되는 경우는 흔하게 벌어지고 있다. 지난 5일 해운대구청 A 과장이 과 직원들에게 단체로 보낸 메시지 내용이 구청 노조 게시판에 올라오자 비난이 쇄도했다. '여자가 남자에게 바라는 거 없어'로 시작하는 이 글엔 '벗어주고, 애무해주고, 빨아주고, 흥분시켜주고' 따위의 낯 뜨거운 표현이 즐비하다. 구청의 한 공무원은 "평소에도 외설적인 발언을 아슬아슬하게 이어가는 간부들이 많이 있다"면서 "직원들에게 음란물을 배포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며 분개했다.

직장인 50% "성희롱 문제 심각"

상당수 직장인들은 우리 사회의 성희롱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하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전국 공공기관·민간사업체 남녀 직원 7844명과 성희롱 대처업무 담당자 1615명을 대상으로 벌인 '성희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절반이 '성희롱 문제가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성희롱의 대표적 유형은 외모 평가였다. 음담패설·성적농담이 그 뒤를 바짝 이었다. 그러나 피해자 10명 중 8명은 '참고 넘어갔다'(78.4%)고 답했다. 여성은 50.6%가 '문제를 제기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라고 했고, 남성은 72.1%가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가해자들이 성범죄를 인식하지 못하고 '재수 없으면 걸린다'며 쉬쉬하는 문화도 여전하다. 조사에 따르면 정식 문제 제기를 통해 성희롱 사건이 알려진 후 가해자의 35.3%는 직장을 떠났다. 그러나 그 여파로 성희롱 피해자가 직장을 그만둔 경우도 20.9%에 달했다.

정미선 직장남녀연구소 대표는 "20년 가까이 성희롱 예방교육을 통해 사회 인식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효과"라면서도 "직급에 따라 나눠 예방교육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소영 기자 mission@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