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준의 정의로운 경제] 임금에 대한 상식적인 의문
사람들이 경제활동을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누구나 떠올리는 상식적인 답이 있다. '먹고사는 것'이다. 그러면 경제학의 과제는? 역시 상식적인 답이 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학은 이런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 것일까? 청와대에서 감옥으로 거처를 옮긴 전 대통령이 그렇게 싫어했다는 '헬조선'이라는 말이 그 답을 대신하고 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먼저 국민 대다수가 먹고사는 구조를 볼 필요가 있다. 먹고사는 활동을 하는 사람(경제활동인구)의 수는 지난해 약 2750만 명이었다. 그중 임금으로 먹고사는 사람의 수는 대략 1960만 명이었다. 70%가 넘는다. '헬조선'의 실체는 바로 여기에 있다. 임금으로 먹고살기 힘든 것이다. 경제학은 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을까?
소위 주류 경제학 교과서를 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거기에서는 경제활동의 주체를 둘로 상정한다. 소비하는 가계와 생산을 하는 기업이 그것이다. 얼핏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 앞서 말한 상식을 대입해 보면 이상한 사실을 보게 된다. 먹고살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한다. 소득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에서 소득을 얻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노동을 제공하는 것과 자본을 투자하는 것이다. 전자를 '임금소득'(근로소득), 후자를 '자본소득'(불로소득)이라고 부른다. 가계는 임금소득, 기업은 자본소득을 버는 주체이다.
경제활동인구의 70% 이상이
임금으로 먹고사는 사람들
먹고사는 문제 해결되려면
임금소득 올리는 법 알려줘야
현실은 소비하는 법만 제시
노동조합 단결력 방해도 커
헬조선이 존재하는 큰 이유
그런데 이 교과서에서는 기업이 자본소득을 버는 방법은 자세히 설명한다. '이윤 극대화'라는 원리이다. 하지만 임금소득을 버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임금소득의 주체인 가계에 대해서는 소득을 높이는 방법이 아니라 주어진 소득을 소비하는 방법만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효용 극대화'라는 원리이다. 이상한 일이 아닌가? 상식으로 보건대 소비는 소득이 있어야 가능한데 소득을 올리는 방법의 설명은 없이 그것을 소비하는 방법만 설명하는 것이다. 경제학이 '헬조선'에 아무런 해답을 주지 못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사실 임금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임금은 노동자가 제공한 노동의 가치(한계생산가치)에 따라 결정된다고 설명된다. 열심히 일하면 임금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이다.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에 허덕이면서 헬조선에 갇힌 사람들이 마주한 현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노동 빈곤'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임금소득을 올리는 방법을 알려주는 경제학은 없는가? 그래서 다른 경제학이 필요하다. 바로 임금소득자의 경제학이다.
임금소득을 올리는 방법은 임금이 노동력의 가격이라는 단순한 사실에 숨겨져 있다. 가격은 교환 두 당사자의 합의로 결정한다. 가격을 높이는 방법은 무엇인가? 교환의 두 당사자는 판매와 구매라는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동등한 '두 개의 권리가 충돌하면 힘이 사태를 결정짓는다.' 다른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 힘은 곧 당사자들의 단결력이다. 노동력 시장의 당사자는 자본가와 노동자이고 이들은 각기 경총과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 있다. 결국, 임금소득을 올리는 방법은 노동조합의 단결력을 높이는 데에 있다.
하지만 민주노총 위원장을 감옥에 가두고 산별노조의 교섭권을 부인하며 전교조의 지위를 아예 박탈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모두 정부가 한 일이다. '헬조선'의 당연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노동자들이 단결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 것, 거기에 헬조선의 해법이 담겨 있다. 그것은 정부가 해야 할 몫이다. 그래서 촛불 대선의 선택은 헬조선의 해법과 곧장 연결되어 있다.
강신준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