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판 뒤흔드는 가짜뉴스] 가짜가 진짜 둔갑, 진짜는 가짜 의심 '요지경 세상'
입력 : 2017-04-11 23:00:50 수정 : 2017-04-12 10:32:23
'가짜뉴스 만들기' 앱. 누구나 간편하게 가짜 외신뉴스를 만들어낼 수 있는 앱이다. 스마트폰 캡처"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
신신애가 부른 '세상은 요지경'의 가사 일부다. 이번 대선의 중요 화두 중 하나는 '짜가', 가짜뉴스(fake news)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해 치러지는 급작스러운 대선에 검증하기 부족한 시간. 이 때문에 후보들이 상대방 흠집내기에 치중하게 됐고, 그 결과 가짜뉴스 생산과 유통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유권자들이 가짜뉴스에 속아 소중한 한 표의 행방이 갈린다면 앞으로의 5년도 어찌될 지 알 수 없는 '요지경 세상'이 될 수 있다.
스마트폰 가짜뉴스 앱 접속
1분도 채 안 돼 기사 완성
'문, 세모그룹 파산관재인'
'안, 천안함 유족 내쫓아' 등
흠집내기 식 악의적 내용
"뭘 믿어야 하나" 시민 불안에
'가짜뉴스 청소법'까지 발의
■가짜뉴스 어떻게 만들어지나
본보 취재진은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가짜뉴스를 만들어봤다. 1만여 명이 다운로드한 가짜뉴스 앱에 접속해 기사 주제와 이름, 위치 등을 작성했다. 1분도 채 되지 않아 그럴듯한 외신 기사 하나가 만들어졌다. '홍길동'이란 가상의 인물은 순식간에 세금 탈세범이 됐다. 스마트폰과 외신에 익숙지 않은 이들은 쉽게 가려내기 어려운 모양새를 갖춘 가짜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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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와 관련해 한 네티즌이 만들어 퍼뜨린 가짜뉴스로 글에 등장하는 영국과 일본의 정치학자는 각각 게임 캐릭터와 애니메이션 주인공이다. |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기사는 SNS를 통해 공유된다. 지난해 12월 촛불집회가 진행되던 시기 영국 정치학자 아르토리아 펜드래건과 일본 정치학자 히키가야 하치만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비난했다는 기사형식의 글이 '박사모' 게시판에 공개됐다. 이 뉴스는 SNS를 통해 보수 성향의 사람들에게 퍼졌고 진실로 받아들여졌다. '제 3자의 눈이 정확하다' 등의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히키가야 하치만은 애니메이션 '청춘 러브코메디는 잘못됐다'의 주인공,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는 아르토리아 펜드래건은 '창을 쓰는' 게임 캐릭터였다.
■가짜뉴스, 대선을 노리다
가짜뉴스는 이슈를 먹고 산다. 정치 이슈가 차고 넘치는 대선기간에 유력 대선 후보인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에 대한 가짜뉴스가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문 후보는 '세월호 원인'으로 지목받는 뉴스에 대해 가짜뉴스라며 법적공방 중이다. 내용은 문 후보가 변호사 시절 유병언 그룹의 파산관재인이었고, 국민세금이 투입돼 1153억 원이 탕감됐다는 것. 그러나 문 후보 측은 "문 후보는 세모그룹 파산관재인이 아니라, 법원이 피해자들의 채권 확보를 위해 선임한 신세계종금의 파산관재인이었다"며 "오히려 세모를 상대로 대여금 반환소송을 내 승소판결까지 받았다"고 반박했다.
안 후보는 최근 대전 현충원에서 천안함 유가족을 쫓아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이 논란은 자신을 천안함 유가족이라고 소개한 한 네티즌이 페이스북에 "천안함 7주기 추모식 때 현충원 관계자들이 VIP(안철수)가 오시니 유가족들에게 모두 나가달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안 후보 측은 사실무근이라며, "가짜 뉴스에 대해서는 형사고발 등 강력 대응하겠다"고 맞섰다.
부경대 정치외교학과 차재권 교수는 "이번 대선은 검증시간이 부족한만큼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리기 쉬운 구조"라며 "악의적으로 작성·배포된 가짜뉴스는 엄청난 파급효과를 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뭘 믿어야 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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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가짜뉴스 사례. 사진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했다는 제목의 가짜 뉴스.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
진짜뉴스에 편승한 가짜뉴스는 교묘할 뿐만 아니라 파급력도 크다. 미국의 핵항모와 강습상륙함이 한반도로 급파되는 등 한반도를 둘러싼 위기가 고조되자 지난 10일부터 '지라시' 형태로 미국의 평양 폭격설과 김정은 망명설 등이 SNS에 나돌고 있다. 진짜뉴스에 기반한 분석이지만, '4월 27일 전쟁설' 등 구체적인 시기와 방법까지 내놓는 건 어디까지나 가짜뉴스다.
확대 재생산되는 가짜뉴스에 시민들은 불안하다. 차상화(34·북구 화명동) 씨는 "지난 대선에서도 국정원 댓글이 문제가 됐지 않나. 정부도 못믿을 판국에 도대체 무슨 정보를 믿어야 하나"라고 말했다. 대선 후보 등 가짜뉴스 당사자들이 의혹에 대해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는 것도 한몫한다. 이민형(43·수영구 망미동) 씨는 "후보들이 의혹에 대해 '아니다'라고만 하는데 명확히 설명하는 경우가 드문 것 같다"며 "그런 태도는 '구리다'라는 생각에 가짜뉴스를 한 번 더 보게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불안이 확산되자 정치권에서는 이른바 '가짜뉴스 청소법'(국민의당 김관영 의원 대표 발의) 제정에 관한 논의도 시작됐다. 통신망 서비스 사업자들이 가짜뉴스 발견 후 삭제하지 않으면 3000만 원 이하의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이 골자다.
일부에서는 가짜뉴스를 제재하려다 건전한 의혹제기도 못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걱정도 있다. 의혹 제기를 가짜 뉴스로 몰아 고발을 당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틀린 표현에 대해서는 단속하지만 합리적 의혹제기에 대해서는 선관위의 단속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장병진·안준영 기자 joyfu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