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홍준표 전 도지사의 꼼수 사퇴와 비호감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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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수 지역사회부 차장

1996년 여당인 신한국당 박희태 의원(전 국회의장)은 "내가 부동산 사면 투자고 남이 사면 투기라더라. 남이 하면 스캔들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인가"라고 야당을 맹비난했다.

당시 신한국당이 총선에서 국회 과반의석을 확보하지 못해 무소속 당선자를 영입하려는데 야당인 국민회의 측이 이를 비난하자 대응한 문구다. '촌철살인' 같은 이 비판은 다음 날 신문 1면을 장식했다. 이후 이 문장은 정치권에서 같은 사안을 놓고 입장이 다를 때마다 등장하는 명논평이 됐다.

오는 5월 9일 장미대선을 앞두고 '로맨스 & 스캔들' 논쟁이 경남에서 다시 회자되고 있다. 지난달 31일 자유한국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는 "도지사직 사퇴는 9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재·보선의 공직자 사퇴시한(선거 전 30일)이 9일 자정이기 때문이다. 홍 후보가 일요일인 9일에 사퇴하면 본인은 대선에 출마할 수 있다. 하지만 경남도선거관리위원회에는 평일인 10일 이후 사임 통보 등 행정 절차가 이뤄져 도지사 보선을 막는 '꼼수 사퇴'를 감행했다.

대통령직에 출마하면서 도지사직은 넘겨주지 않으려는 자신만의 '로맨스'를 구상한 것이다. 홍 후보의 로맨스 구상에 야당을 중심으로 '도민의 참정권을 짓밟는 행위'라며 반발이 거셌다. 하동참여자치연대는 "경남도민의 삶을 볼모로 한 꼼수 사퇴, 상왕정치 안 된다"고 비판했다. 논란이 일자, 그는 "도지사 보궐선거가 생기면 시장·군수들이 출마하려고 사퇴하고, 또 그 빈자리에 출마하려는 도의원들이 줄사퇴하게 된다"면서 "지방선거를 다 하려면 300억 원이 들고, 그 돈은 국고가 아니라 경남도에서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홍 후보의 해명은 전직 도지사로서의 애정이라기 보다 숨은 꼼수(?)가 있다. 그동안 경남지사 자리는 보수의 전유물이었다. 김두관 전 지사를 빼고는 모두 보수 후보였다. 그러나 내달 도지사 보선이 실시된다면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 후보가 당선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도지사직을 야당에게 뺏기기보다는 자신이 임명한 도지사 권한대행 체제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스스로 내년 지방선거에 나설 여지도 있다.

논란 속에 홍 후보는 9일 자정 3분을 남겨두고 도지사직을 사퇴했고, 보선은 없는 것으로 결론났다. 현재 홍 후보는 '도지사-대선 후보-대통령'이라는 자신만의 로맨스에 빠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자신만의 로맨스는 상대방에게 거부감을 준다. 최근 한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각 정당별 5인 대선후보 중 '절대 투표하지 않을 후보는 누구냐'는 응답에서 홍 후보가 1위(38%)를 차지했다. 심지어 도지사를 지낸 경남과 부산에서도 38.7%가 비호감이라고 응답했다.

그의 주장대로 도지사 보선 비용 300억 원이 정말 아깝다면 그는 대선출마를 포기해서라도 도지사직을 유지해야 했다. 반대로 대선을 선택했다면 보궐선거는 선거법과 경남도민에게 맡겨야 했다. kks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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