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계층 격차 완화하는 교육공약 나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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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장수 부경대 경제학부 교수

정확히 10년 전의 일이다. 교육부에서 일할 때였다. 모처럼 휴가를 얻어 부산의 지인들과 제주공항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었고, 제주공항 대합실에 도착해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순간 휴대전화가 울렸다.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전화기를 켰을 때 부재 전화가 매우 많이 와 있어 이상하다 싶었다. 교육부로 빨리 와야 할 것 같다는 전화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특목고 관련 사안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교육부에 대응책을 지시했다는 내용이었다. 어쩔 수 없이 공항 주차장에서 부산의 동료들과 '만나자 이별인사'를 나누고 어렵게 항공권을 구해 서울로 되돌아갔다.

곧 교육부 차관을 중심으로 한 특목고 대응팀이 만들어져 매일 아침마다 회의가 열렸다. 특목고가 설립 목적과 달리 운영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초중등 학교 운영 전반을 비정상적으로 만들고 있어 이에 대한 해결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회의였다. 특수목적을 위해 설립된 외고 졸업생의 다수가 외국어와는 관련 없는 학과로 진학하고, 의과대학으로 진학한 과학고 졸업생들도 적지 않았다. 많은 특목고는 오로지 더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었으며, 그러다 보니 좋은 대학에 입학하려는 우수 중학생들을 거의 싹쓸이하는 상황이었다.

10년 전 노무현정권 말기에
특목고 문제 집중 논의 불구
이명박·박근혜정부서 더 심화

특목고는 본말전도를 넘어
사회 진출 후 계층까지 결정
'장미 대선'서 해법 나와야


수로는 전체 고등학생의 몇 퍼센트도 되지 않는 특목고 학생들이지만 이들의 상당수는 이른바 SKY대학에 입학, 졸업한 후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당시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 합격자들의 상당수가 특목고 출신이었다. 이미 이들은 한국사회의 주도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고 이대로 가면 이 현상은 더욱 강화될 것임에 틀림없었다.

새로운 최상위 계층이 이미 고등학교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 고등학교 유형에서 가장 핵심적이어야 할 일반고는 특목고에 들어가지 못한 학생들이 가는 학교로 낙인찍혀 있었고, 이 모습이 중학교에 그대로 전달되면서 중학교에서 학업능력이 우수한 학생들은 특목고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에 전력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학교 계층구조는 고등학교 단계에서 견고하게 구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느 것이 먼저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학생들이 선호하는 유명 대학들은 때로는 변칙적인 입시전형 방법을 동원하여 특목고 학생들을 많이 선발하기 위한 노력에 들어갔고, 이러한 현상으로 특목고 인기는 전례없이 높아지고 있었다.

일반계 고등학교를 주축으로 하면서 특정 재능을 가진 학생들을 선발하여 그 재능을 키워 보자는 의도에서 예외적으로 만들어진 특목고는 본말이 전도되어 고등학교 체계를 비정상적으로 만들고 더 나아가 초중교육까지 왜곡시키고 있다는 것이 당시 판단이었다. 그러나 정권 마지막 해에 이것을 정상화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더구나 이 왜곡은 노무현정부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전 정부들로부터 진행되어 왔던 사안이라 비록 해결책을 만들더라도 짧은 기간 동안 시행할 방법이 없어 다음 정부에서 해결되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명박정부는 인수위 때부터 형평성보다 수월성을 강조하면서, 그리고 '교육의 자율'이라는 명목하에 특목고 설립을 확대하였고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라는 새로운 학교 유형을 만들어 일반계 고등학교를 더욱 궁지에 몰아넣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로 넘어오면서 고등학교 간의 위계는 더욱 강고해졌고 어느 학교 유형에 속하는지에 따라 학생들의 사회 진출 후 계층이 결정되는 경향은 더욱 강해지고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특목고와 자율형 사립고등학교 학부모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는 일반계와 특성화고 학부모보다 훨씬 높다는 점이다. 부모 간의 격차가 자녀 간 격차를 확대재생산하는 구조이다.

물론 4차산업혁명을 이끌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교육의 중요한 역할이다. 교육은 개인·조직·국가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투자 대상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교육은 계층 간 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핵심 요소가 되어야 한다. 특히 계층 간 격차가 심해지고 이것이 국가 발전과 국민 통합을 힘들게 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교육정책의 목표는 계층 간 격차를 완화하는 데 우선순위가 부여되어야 한다. 4차산업혁명 등 미래의 교육공약도 필요하지만 당장 계층 간 격차를 완화시킬 수 있는 공약이 더욱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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