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치(어린 갈치) 252마리 1상자 만 원… 푼돈에 갈치 씨 마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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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부산공동어시장에 위판된 풀치들. 가운데줄 일렬로 배열된 것들을 제외하고 어지럽게 상자에 들어차 있는 것들은 대부분 사료나 어묵용 풀치라고 보면 된다.

"이러고도 어자원 보호하자고?" 5일 아침 부산공동어시장 위판장. 줄을 맞춰 상자에 넣기에는 크기가 너무 작아 마구잡이로 쏟아부은 풀치(새끼 갈치)가 위판장 상자마다 가득 쌓였다. 풀치를 왜 실치라고 부르는지 한눈에 봐도 이해가 되는 크기다. 30㎝ 플라스틱 자 굵기만한 갈치 새끼들이 질서 없이 뒤엉켜 처분을 기다리고 있었다.

플라스틱 자 굵기만 한 갈치 
싹쓸이 남획 해도 너무해 
하루 위판량 84%가 '치어' 
어자원 고갈에도 정부 뒷짐
"현실성 없는 규제 바꿔야"

이 중 한 상자를 임의로 골라내 내용물을 분석해 봤다. 18㎏ 한 상자에 들어 있는 풀치는 모두 252마리. 중량을 재어보니 100g 미만이 97%를 차지했다. 대부분이 50~90g대에 분포해 있었고 50g 미만도 10%나 됐다. 이 한 상자의 위판 가격은 1만~1만 1000원. 이날 위판된 갈치의 84%가 이런 상자였다. 이들 대부분은 어묵 공장이나 사료용으로 팔려나갔다.

최근 대형선망업계가 잡아들이고 있는 풀치의 남획 정도가 심각해 아예 씨를 말리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있으나마나한 체장 제한(항문장 18㎝) 때문에 법적으로야 문제될 것이 없다 해도, 이대로 가다가는 몇 년 내 우리나라에서 갈치를 보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 5일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등에 따르면 4일 부산공동어시장에 위판된 갈치 기준, 체장 제한을 겨우 넘는 18~19㎝가 전체의 70%가량을 차지했다. 이같은 상황은 해를 거듭하면서 점점 심화돼 왔지만, 올해는 특히 더 심각하다.

이날 현장에서 위판을 지켜본 한 수산업계 관계자는 "1만원짜리 한 상자 팔아봐야 몇 천 원 남으면 많이 남는 것일 텐데 아무리 조업구역이 좁아지고 어자원이 줄었다 해도 너무하는 것 같다"면서 "이러면서 어자원 보호를 위해 바닷모래를 퍼내지 마라고 할 자격이 있느냐"고 꼬집었다.

조업을 포기했으면 했지, 이처럼 과도하게 치어를 남획하는 것은 바다 자원의 수명을 더욱 단축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이참에 현실성 없는 체장 제한을 더욱 현실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 김중진 연구사는 "자원보호를 위해서는 군성숙 체장(절반이 산란에 참여) 이상 되는 것을 잡아야 하지만 현재 금지 체장은 어민 반발 때문에 그보다 낮게 설정돼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길이보다 굵기나 무게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일 어업협정 결렬 등으로 어민들을 벼랑으로 내몰아 놓고도, 이렇다할 대책도 마련하지 않고 있는 해양수산부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해수부 관계자는 "대체어장이나 휴어기 확대 등 여러가지 지원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예산 마련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글·사진=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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