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한국 해운과 조선, 서로 독(毒)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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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환 서울경제팀장

"이게 뭐하는 짓이냐."

조선업계가 최근 해운업체에 발끈했다. '수주절벽'으로 대우조선을 비롯한 국내 조선소들이 생사 기로를 헤매는데 국적선사들이 중국 조선소에 잇따라 선박을 발주하고 나섰다는 소식이 들려서다. 중국 조선소가 한국보다 선가를 싸게 받는다지만 해서는 안 될 행태라는 게 조선업계의 주장.

벼랑에서 서로 떠미는 해운·조선
상생 구조로 전환해야 생존 가능
힘 합치는 일본·중국과는 정반대
대선 맞아 실효성 있는 공약 기대

누가 봐도 수긍할 만한 일이고, 실제 많은 공감을 얻었다.

근데 정작 해운업계에선 "황당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해운업계의 항변은 전혀 다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국내 선사들이 잇따라 침몰할 때 조선업체들은 승승장구했다. 해양플랜트에다 초대형 선박 수주가 줄을 이었다. 문제는 초대형 선박이다. 세계 1위 선사인 머스크는 대우조선에서 만든 1만 8000TEU급, 세계 2위인 MSC는 현대중공업에 발주한 1만 6000TEU급 컨테이너선으로 세계 시장을 호령했다. 반면 국내 선사들은 구조조정을 하느라 단 한 척의 대형 컨테이너선도 발주하지 못했다. 규모의 경쟁에서 밀린 한진해운은 결국 청산됐다. 단순한 시장논리에 의한 것이면 수긍하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금융당국이 개입했다. 수출입은행이 국내 조선업계를 위해 거액을 대줬고, 이것은 부메랑이 돼 국적선사들의 목을 졸랐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지만 조선소와 은행은 꿈쩍도 안 했다."

한마디로 조선소와 금융당국이 합작해서 선사들을 벼랑으로 내몰았는데, 그땐 답도 없더니 지금와서 왜 이러느냐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

또 결과적으로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이 됐다.

해운·조선 분야에서 우리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중국이나 일본도 그럴까. 아니다. 정반대다.

중국은 선사 지원을 통해 조선업으로 유동성을 흘려보낸다. 전방산업인 해운업을 통해 후방산업인 조선업을 발전시킨다는 전략이다. 중국은 2008년 이후 COSCO와 차이나쉬핑에 자국 수출입은행 등을 통해 무려 41조 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그러면서 선사들에는 자국 조선사에 신조선을 발주할 경우 추가로 현금을 지원했다.

일본의 해운·조선업계 간 상생구조는 더욱 공고하다. 정부의 정책이라기보다는 민간차원에서 선주와 선사, 조선소가 자발적으로 '삼각 편대'를 꾸리고 있다. 일본 선주들은 배 1, 2척을 가진 개인이 많으며, 이들은 일본 조선소에 신조선을 발주한 뒤 이를 자국 대형선사들에 용선하는 것을 '전통'으로 지켜나가고 있다.

한국 해운·조선업만 망하는 길로 가고 있다.

더 한심한 것은 전문가들은 이미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18대 국회 때인 2009년 국회의원 51명은 '해운·조선산업 공동발전 촉구 결의안'을 발표하기도 했고, 지난해에는 해양수산부, 산업부, 금융위, 선주협회, 조선해양플랜트협회, 수출입은행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해운·조선 상생 협력을 위한 관계기관 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언제나 신통찮았다. 이는 해운·조선업 상생 문제가 정치·경제·사회의 여러 세력이 얽혀 있는 만큼 의외로 해결이 어렵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유도 가지가지다. 이명박 정부 당시에는 해수부가 국토부에 통폐합됐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해수부가 독립해 있는 현재에는 "장관을 비롯한 고위관료들의 보신 차원의 처신을 미처 예상치 못했다"는 자탄이 나왔다.

명확한 것은 지금처럼 해운은 해수부, 조선은 산업부, 선박금융은 금융위와 국책은행이 나눠 맡으면서 '따로국밥'식으로 정책을 펼쳐서는 결국 또 공염불이 된다는 것이다.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상생 협의체'나 '해운·조선·금융 3자 조정기구'와 같은 느슨한 조직도 결국 오십보백보다.

대선 시즌을 맞아 해운·조선·선박금융을 총괄하는 부처 탄생을 기대해 본다. jhwa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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