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건축 이야기] 16. 구서동 레스토랑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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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한 상상력과 주변 풍경, 그 절묘한 어울림

윤재민 건축가가 설계한 구서동 레스토랑 '구상'은 '건축함'에 있어 주위와 자연의 소통을 이룬 '관계론적 건축'의 좋은 사례다.

휴식(休息) 의미는 사람(人)이 나무(木)에 편안히 기대어 마음(心)의 자유(自由)를 얻는 상태다. 경쾌한 리듬에 실려 잔뜩 졸였던 마음을 느슨하게 풀고 싶은 해방감이 저절로 느껴지는 공간이 있다. 주변의 우중충한 풍경으로부터 막을 건 막고, 뚫은 건 뚫는 절묘한 배치로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부산 금정구 구서동에 위치한 연면적 490㎡, 지상 3층의 레스토랑 구상(口相). 독특한 창조성과 재능으로 요즘 전국적으로도 뜨고 있는 제이엠와이아키텍츠 윤재민 대표가 설계했다. 윤대표는 특히 장소성을 강조한다. 기존 카페가 유명 상표와 결합한 덩어리에 불과하지만 레스토랑 구상은 인근의 산과 주위 도시와의 장소성을 고려했다. 바깥으로 계단을 설치, 층층이 오르면서 바깥 풍경도 즐긴다. 외부는 노출콘크리트와 복층유리, 내부는 노출콘크리트로 마감 처리했다. 이 공간, 저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연출되는 다양한 공간 연출을 즐기는 것도 이채롭다. 특히 손님들의 이동 동선을 내부에서만 한정시키는 게 아니라, 외부까지 확장해 틈새 다섯 공간을 테라스 같이 만들었다. 손님들은 식사 후 바깥 공간에서 여유롭게 커피와 담화를 즐긴다. 여행에서도 그냥 막 찍은 스냅 사진은 잘 안 꺼낸다. 하지만 여기서는 사진작가가 예술적인 앵글로 찍은 듯한 추억 속의 한 장면을 연출한다. 그렇다고 다른 레스토랑에 비해 건축비가 많이 들어간 것도 아니다.

산과 주위 도시와의 장소성 고려
이동 동선 내·외부 공간 넘나들어
틈새 다섯 개의 공간이 곧 테라스

마름모꼴 지형 역발상으로 풀어내
기존 카페 '상품 덩어리' 설계 탈피

윤 대표의 설계작들은 '좋은 것만 취하고 좋지 않은 것은 버린다'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당장 형편에 맞지 않는 좋지 않은 것들을 한 단계 더한 발전을 위해서 기꺼이 받아들인다. 레스토랑 구상 역시 기존 마름모꼴 지형이란 제약을 역발상적으로 승화시켜 다양한 공간감을 풀어낸다. 

레스토랑 '구상' 전경
윤 대표는 "햇볕과 통풍, 따뜻하고 아늑하며, 질리지 않아 기본에 충실한 집을 짓는 게 저의 건축 철학입니다. 그것이 바로 건강한 집이죠"라고 말한다. 또 "지역성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리겠지만, 저는 남쪽 지역의 따뜻한 기후에 맞는 개방성이 지역성이라고 생각합니다"고 덧붙인다. 이러한 축적들이 계속 쌓이면 그 지역의 독특한 지역성을 확산시킨다는 것이다. 도시이론가 찰스 랜들리가 말한 것처럼, '창조도시는 도시민이 창조적으로 생각하고, 창조적으로 계획하고, 활동하게 하는 유기체로서의 도시'를 말한다. 멋진 레스토랑과 카페에서 '창조적 계급'인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생성해내는 '발칙한 생각'들이 바로 창조도시를 만드는 원동력 아니겠는가.

젊은 건축주 이상구 씨(41)는 "단순한 레스토랑이 아니라, 문화 공연과 기획을 통해 입과 귀가 즐거운 공간을 생각했다"며 "손님들이 식사 후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공간감을 느끼는 것 같아 기쁘다"며 만족감을 나타낸다.

최근 서울의 유명한 건축가들이 부산 지역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카페를 지어 많은 시민이 찾아가고 있다. 하지만 레스토랑 구상은 지역의 유능한 젊은 건축가와 건축주가 함께 의기투합했다. 윤 대표는 "건축 설계 가운데 최고봉은 상업공간 설계란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도시의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상업공간들이 공간 효율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공간들이 퇴색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긴 데서 이번 작업은 출발했다"고 설명한다. 
바깥 베란다 및 내부 모습. 건축사진작가 윤준환 제공.
윤 대표는 일상의 자질구레한 대상들을 분리해 자기 고유의 재료를 통해 그것들을 생소한 풍경으로 만들어내는 데 일가견이 있는 건축가다. 고정관념을 재점검하며 '왜?' 물음표를 달고, 그다음에 '무엇'과 '어떻게'를 실체적으로 구현해놓는다. 그는 이러한 행위를 "건축가는 인간의 욕망을 수치화해서 현실화시키는 지난한 직업"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윤 대표의 건축적 소통은 일방적 통지 행위가 아니다. 건축주와의 끊임없는 대화적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창조성으로 확장돼 건축가와 건축주에게 뿌듯한 성취감을 안긴다. 레스토랑 구상은 개방적, 지역성, 장소성들이 혼융돼 나온 훌륭한 레스토랑이다. 윤 대표의 표현대로 기본에 충실한 건축물이다. 그런데 그 기본은 윤 대표의 치열한 현실 인식과 고독한 자기 정제 과정을 거친 후에 비로소 탄생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박태성 문화전문기자 pt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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