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일기] "시는 시행사 편" 의혹 자초한 김해 나전지구 폐기물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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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백 지역사회부

"과전이하(瓜田李下)."

오이밭에서는 신을,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을 고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괜히 오해받을 짓을 하지말라는 선인들의 지혜다.

최근 김해시 핵심 이슈 중 하나인 나전지구 불법폐기물 매립 의혹에 대한 시의 대처방안을 보면서 먼저 이 말이 떠오른다.

갈등과 문제가 생기면 이를 앞장서 푸는 것이 지방자치단체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나아가 자치제가 정착하면서 직선제 단체장이 이끄는 행정에 요구하는 그 역할은 단순한 역할을 넘어 '의무'나 '시민의 명령' 쯤으로 받아들여진다.

최근 김해시가 보인 행정력은 이 같은 역할과는 딴판이다. 갈등을 풀고 해법을 찾기는커녕 '누구라도 의심할 행동'을 주저 없이 하면서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고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의도적으로 갈등을 야기시는 것은 아닌지까지 일각에서 의심을 품을 정도다.

전말은 이렇다. 나전지구는 이 지역 대표 기업가 박연차 회장이 이끄는 태광실업에서 3000여 가구의 임대주택 건설을 추진중인 사업장이다.

굳이 '이윤의 사회환원' 등등 기업가의 사회적 책임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성공한 재벌의 이미지는 불행하게도 지역민들에게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나전지구가 전형적인 예다. 석산개발지역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추진되자 주변에선 "박연차이니까 가능하겠지", "시와의 특별한 관계(?)"라는 얘기들이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이런 상황에서 폐기물 불법 매립 의혹이 불거졌고 환경단체와 시행사 간 다툼으로 몇개월째 시끄럽다. 가까스로 양 측이 합의를 통해 시추에 나섰고 조만간 분석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다.

이 와중에 김해시가 사태를 더 꼬이게 만들기 시작했다.

시추 과정에서 나온 폐기물 의심 물질에 대해 시 해당 부서에서는 느닷없이 자료를 내고 "폐기물이 아니다"고 단정해 버렸다. 분석 결과가 나오면 저절로 확인될 상황을 단정지어 결론을 내려버린 것이다.

시는 여기에 더해 시추 샘플을 분석기관에 의뢰하면서 폐기물 매립 의심업체에게 수송을 맡기는 이상행동을 또 했다. '시는 시행사 편'이라는 불신에 기름을 붓고 결국엔 확신을 갖게 할 정도의 의심을 자초했다.

환경단체가 결과 발표에 앞서 "시의 공식사과와 토양오염 여부 조사를 전면적으로 펴야 한다"고 공세에 들어간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뒤늦게 시장이 직접 나서 "샘플 분석결과가 나오면 그 결과에 따라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지만 한 번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엔 저질러 놓은 흠결이 너무 깊어 보인다.

김해시청사에 내걸린 '더 낮은 자세로, 시민과 함께', '사람 중심의 도시'라는 구호가 '과전이하'와 오버랩된다.

jeong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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