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준 칼럼] 이젠 미래를 토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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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준 논설위원

대선이 이제 40일도 채 남지 않았다. 주요 정당의 대선후보가 사실상 결정된다는 '슈퍼 위크'도 끝나 간다. 이미 경선을 끝내고 후보를 선출한 정당도 있다. 이제 대선 본선에 나설 정당 후보들의 윤곽이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아 가고 있다.

어느샌가 정당의 대선 후보는 경선을 통해 뽑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다. 또 경선 과정에서 후보 자질과 능력을 검증하는 수단으로 TV토론은 빼놓을 수 없는 절차가 됐다. 실제 많게는 무려 11차례, 적어도 대여섯 번씩은 정당마다 경선후보 간 토론을 했다. 그러나 어느 정당 할 것 없이 한 번만 보면 다시 볼 생각이 들지 않는 토론이었다. 매번 똑같은 내용이 반복되니 실제 다시 볼 필요도 없었다. 국민이 후보들에 대해 알고 싶고, 검증하고 싶은 것이 많지만 토론을 통해 알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런 토론을 왜 몇 차례씩 되풀이하는지 묻고 싶을 정도였다.

여러 차례 열린 정당 경선 토론
편 가르기·편먹기 논쟁만 벌여

집권만이 목표여서는 안 돼
후보의 비전과 청사진 제시해야

대한민국의 내일을 고민하는
품격 있는 토론을 보고 싶다


토론에 나선 후보들은 저마다 '내가 후보가 돼야 이길 수 있다'는 주장만 되풀이했다. 일자리나 복지, 사드 배치와 관련한 안보 문제 등 정책에 대한 토론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정작 머릿속에 남는 것은 거의 없다. 대신 모든 정당의 토론에서 가장 비중 있게 다루어진 쟁점은 연합이나 연대, 연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정치 게임이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에서 논란이 된 '우파 대연합'이나 '범보수 단일화', 국민의당의 '자강론'과 '연대론'은 결국 혼자 힘으로는 당선되기 어려우니 선거 전에 누군가와는 손을 잡아야 되는데, 누구와 손을 잡느냐 또는 누구와는 손을 잡지 않느냐를 둘러싼 입장 차이에 불과하다. '대연정'을 둘러싼 민주당의 논쟁도 마찬가지다. 다만 선거 전에 다른 세력과 손을 잡아 정권을 잡자는 여타 정당들과 달리 지지율에서 앞서가는 정당답게 정권을 잡은 다음 누구와 손을 잡느냐를 두고 논란을 벌인 것일 뿐이다. 하기야 이번 대선의 판 자체가 편 가르기와 편먹기가 전부인 것처럼 돼 있으니 토론 역시 그쪽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본선에 나설 후보를 뽑는 당내 경선이라 해도 많은 토론 끝에 남은 것은 권력을 어떻게 잡고, 잡은 권력을 어떻게 나누느냐에 관한 이야기가 전부라는 사실은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대선 본선이건 당내 경선이건 선거에 나선 후보라면 지지자를 결집하고 세를 규합해 이기는 것이 당면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선거에 출마한 후보 본인이나 주변의 정치인이나 선거에 이기고 집권하는 것은 정치적 사활이 걸린 최대 관심사인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정치인에게 집권은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집권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선거는 후보가 자신의 비전을 내보이고 그것을 유권자들로부터 승인받는 절차다. 그리고 그 과정인 선거운동은 선거의 두 당사자인 후보와 유권자 사이의 소통이다. 소통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어야 한다. 국민이 후보들로부터 알고 싶은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대통령이 되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얼마나 나은 내일을 가져다 줄 것인지다. 후보가 꿈꾸는 미래의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지가 궁금한 것이다. 비전 없이 당선만을 목표로 삼은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정작 듣고 싶은 이야기는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는 그동안 불행하게 임기를 마무리한 역대 대통령들과 이번 대통령 탄핵 사태를 통해 이미 알고 있다.

며칠 후면 각 정당의 대선후보 경선이 모두 마무리되고 대선에 나설 후보가 결정된다. 아직 후보 단일화라는 변수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싫든 좋든 그 후보들 가운데에서 국민은 선택을 해야 한다. 또 그들 후보 중에서 다음 대통령이 나올 것이다. 선관위의 공식 TV토론 세 차례를 비롯해 많은 후보 간 토론이 열릴 예정이다. 본선 토론은 대한민국의 미래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품격 있는 토론이 돼야 한다. 대선 후보들이 만들고자 하는 대한민국의 큰 그림을 보고 싶다. 유권자들은 누가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를 냉정하게 살펴봐야 한다. 자신의 비전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대신 '내가 대통령이 되기만 하면'이라는 말만 하는 후보가 있다면 그 후보는 대통령의 자격이 없다. joo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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