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톡톡] '복부인'도 아니면서 1년 넘게 '땅' 보러 다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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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나이인지라 요즘은 두서넛만 모여도 '중·장년 혹은 은퇴 이후의 삶'을 이야기한다. 심지어 40대 후반에 '졸혼'(결혼을 졸업한다는 뜻으로 혼인 관계는 유지하지만 부부가 서로의 삶에 간섭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개념)을 선언한 지인의 친구 이야기에 화들짝 놀라는 중이다.

예전 같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나이 드는 삶'을 다룬 자기계발서에도 눈을 돌려서 밑줄까지 쫙쫙 그어 가며 읽고 있다. 어쩌면 살아 보지 않은 날들에 대한 궁금증을 앞서 노년을 맞이한 그들로부터 전해 들으며 미리미리 인생 후반을 준비하겠다는 의지일 것이다.

그나마 고무적인 건 나이 들어서 살 집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일이다. 그것도 혼자가 아닌 여럿이. 단순히 더 크고 좋은 집에 살고 싶다는 욕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위한 플랫폼 같은 존재의 커뮤니티 주택을 꿈꾸는 중이다.

다들 쉽지 않은 결정을 했다. 평범한 사람들에겐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달랑 한 채 있는 아파트나 주택을 팔아서 일정한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새로운 형태의 집을 지어서 '공동'으로 소유하겠다는 생각을 하니 말이다. 물론, 그게 부담스러워 주택건축조합 결성 단계에서 탈퇴하거나 작업실 정도의 소극적인 참여를 표방한 이들도 있다. 그 와중에도 주거용으로 함께하겠다는 이들이 서너 가정이나 된다는 건 위안이다.

우리 예산 규모나 지향하는 바에 걸맞은 땅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땅값과 건축비를 맞춘 부지만 계약하면 금세 집을 지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우리가 1년 넘게 부산 시내 곳곳의 땅을 보러 다니게 된 사연이기도 하다. 다 같은 땅이라도 완충녹지가 있는가 하면 자연녹지가 있고, 사람이 다니는 길이면 모두 도로인 줄 알았는데 계획도로와 현황도로, 일반도로로 구분되면서 땅값에 영향을 미쳤다.

집 지을 땅 구하는 일이 늦춰지는 게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그 사이 우린 격주로 만나서 살고 싶은 집과 모여 살면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행복한 대화를 나누게 됐다.

"전시 공간 형태의 스튜디오와 강좌를 진행할 수 있는 아카데미를 만들어요. 나이 들어서도 할 수 있는 소일거리도 되잖아요. 공동 주방이나 서재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우리 공동체 혹은 공간으로 인해 동네가 변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만남의 횟수가 늘수록 서로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아가고 있다. 하긴, 평생을 함께할지도 모를 사람을 얻는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일까! 오늘도 우리 '단톡방'엔 새로운 메시지가 올라온다. "이번 주 집짓기 모임은 조금 일찍 만나서 식물원 옆 땅을 보고 저녁을 먹도록 해요!" 김은영 선임기자 key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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