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부산일보 해양문학상 우수상-유연희 <일각고래의 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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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부산일보 해양문학상 우수상-유연희 <일각고래의 뿔> 

암홍색 어둠의 어디에도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갯내가 난다. 내게서 나는 냄새일까. 일본인 주차 관리인이 나를 보고 웃는다. 나도 웃음을 보낸다. 그는 한국어를 모르고 나는 일본어를 모르니 어색함을 웃음으로 떼운다. 자연은 즉각적으로 틈새를 메운다. 광포하고 얄짤없이. 솔피 강은 바로 떠나라고 했다. 대봉호의 박선장이 딸려 갔다는 것이다. 어쩌다 그리 되었는지 설명도 없었다. 대봉호도 우리 배처럼 고깃배로 위장하고 고래를 잡는다. 평소에는 얌전하게 조업을 하지만 고래를 발견하면 달라진다. 배는 속력을 높이고 배 안엔 긴장과 전의가차오른다. 포수들은 비밀장소에 숨겨 둔 작살을 순식간에 꺼내 날린다. 그리고는 먼 바다로 끌고 가 깜쪽 같이 해체하고 태연히 돌아온다. 어떤 증거도 남기지 않았고 정보와 감시는 철저하다. 그런데 대봉호가 걸렸다니 어찌 된 걸까. 솔피 강은 다짜고짜 공항으로 가라 했다. 민혜와 백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출어하듯 며칠 나갔다 오라구. 그가 전화를 끊자 나는 여권을챙겨 집을 나왔다. 돌풍은 느닷없이 분다. 바다에서 공기가 따뜻해지면 위로 올라가는데 그 사이에 빈 공간이 생긴다. 그러면 위에 있던 차가운 공기가 아래에 생긴 공간으로 내려오는데그게 돌풍이다.‘바람의 숨’이라고도 하는 돌풍은 어물거리면 얄짤 없다. 솔피 강은 그래서 여유를 주지 않았고 돌풍은 빨리 피하는 게 상책이긴 하다.

공항 대합실에는 민혜와 백이 먼저 와 있었다. 선글라스를 낀 민혜와 카키색 야구모자를 쓴 백은 제법 여행자처럼 보였다. 제일 먼저 떠나는 비행기가 후쿠우카 행이에요. 나가사키로 가는 게 어때요? 거기서 하루 묵고 우레시노로 가는 거예요. 민혜가 말했다. 나는 아무 곳이라도 상관 없다. 나가사키라니 다이지 마을이 떠올랐다. 백이 야구모자의 챙을 치켜 올리며 소리쳤다. 아니. 구마모토에 지진이 난 거 몰라요? 나는 몰랐다. 어제 밤에 지진이 일어났고 우레시노와는 반경 100키로 거리라는 것이다. 상관없어. 우리가 가는 곳은 불의 고리와는 반대편이거든. 민혜가 규슈의 지도를 스마트 폰으로 보여 주었다. 민혜와 백은 모든 것을 스마트 폰으로 해결한다. 이게 불의 고리인데… 이걸 봐요. 불의 고리가 움직이는 판과 우레시노는 반대쪽이거든. 나는 붉은 뱀처럼 꿈틀거리는 불의 고리보다 민혜의 손가락을 보았다. 아니 손가락이 아니라 손톱이 눈에 들어왔다. 치장을 전혀 하지 않은 손톱은 이상하게 내 눈엔 또 하나의 이빨처럼 보였다. 동물의 생존 도구인 이빨.

백도 지지 않았다. 지진 현장을 검색해 들이 밀었다. 종이처럼 찢어진 구마모토 성(城)벽과희움한 연기가 치솟는 아소산, 지점토처럼 떨어져내린 도로 위로 부상자와 사망자 숫자가 지나갔다. 구마모토 공항이 패쇄되고 수도와 전기 공급이 끊겼어요. 진도 6. 7이라고요. 여진이일 주일은 계속 될 거라네요. 민혜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정말 무섭네. 그럼 우리각자 알아서 합시다. 미스터 백은 가고 싶은 데로 가. 나는 나가사키로 갈래. 황포님은 어쩌실래요? 민혜가 깔끔하게 정리했다. 민혜는 다른 사람들처럼 나를 황포라고 불렀다. 황포수의 준말이었다. 정신이 들었다. 그녀는 명목상이긴 해도 선주다. 솔피 강은 진작부터 배를 동생인 민혜의 명의로 돌려 놓았다. 나는 별 준비도 없이 허겁지겁 공황으로 왔다. 어물거리다 민혜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 나는 포수이니 선주 따라 가야지요. 민혜가 픽 웃었고 백이, 그럼 나는 조수니 포수 따라 가야 하느냐고 투덜거렸다.

아니. 아니야. 미스터 백은 원하는 대로 가. 민혜가 진심어린 어조로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지진 지역이라 더 안전할 수도 있지 않겠어? 등잔 밑이 어둡다고 설마 지진 지역으로 튀었다고 누가 상상이나 하겠냐고? 백이 약간 시무룩한 얼굴로 2. 3초 생각하더니, 좋다. 같이 가겠다고 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데? 민혜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그럼 모두 나가사키에 가서 고래 이빨이나 구경하자고 했다.

고래 이빨? 의외였다. 나가사키 짬뽕과 원자폭탄, 다이지 마을도 떠올랐지만 고래이빨은 생각하지 못했다. 나가사키에 고래 이빨이 있다고요? 아니나 다를까. 백이, 황포님. 한번씩 웃겨요. 당연히 이빨도 있지요. 아마 술고래도 있을 거라고 했다. 장생포에 고래박물관이 있으니 나가사키에도 그런 게 있을 거다. 한 때 마을 전체가 고래로 먹고 살던 다이지 마을이 있던 지역이니 고래 이빨이나 수염판도 있겠지. 뭔가를 보존하고 관리하는데 소질이 있는 일본인 아닌가. 선주님. 우리 거기 가서 사케 고래를 잡읍시다. 장생포의 명작살잡이가 떳으니 아예고래 사케를 거덜 내고 와야지요. 백이 호들갑을 떨었다. 조금 전, 지진을 겁내던 녀석 답지 않게.

후쿠우카 공항에 도착했을 때 해가 남아 있었다. 차는 공항에서 렌트했는데 은색 토요타는 모델하우스처럼 깨끗했고 운전은 백이 했다. 나가사키의 숙소는 스마트 폰으로 검색하고 한국어 내비게이션을 따라 왔다. 그런데 호텔 간판을 눈 앞에 두고도 주차장이 보이지 않았다. 차가 같은 길을 3번 째 서행하자 민혜가 조주석의 차문을 달칵 열고 내렸다. 내가 가서 물어볼게 하고는 호텔 로비를 향해 뛰었다. 나는 깜짝 놀랐는데 백은 태연했다. 마치 누군가 그래주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주황색 조명이 환한 호텔 로비로 뛰어드는 민혜에게서 솔피 강이 보였다. 빠른 판단력과 행동력은 솔피 강의 것이었다. 살아남는 자의 특기. 평소에는 오빠와 다르다 여기던 민혜가 결정적인 순간엔 순발력이 있었다.

주차장은 강민혜가 내린 후에야 찾았다. 호텔을 끼고 도는 ㅁ형태의 건물 뒤쪽에 주차장으로 가는 사이길이 있었다. 길은 어둑하고 주차장 표시도 없었다. 주차 타워 앞에 이르자, 안에서 주차 관리인이 왔다. 우리나라에서라면 왜 주차표시를 해 놓지 않았느냐고 언성부터 높혔을 것이다. 나는 대신 백을 채근했다. 선주부터 찾아봐. 사잇길은 어두웠고 여자 혼자 낯선 땅에서 길이라도 어긋나면 큰일이다. 백은 군말 없이 왔던 길을 짚어 갔다. 바다에선 신통찮던 백이 육지에선 달랐다. 인터넷을 잘하고 운전대가 오른쪽인 일본차도 잘 몰았다. 이상하게 덜거덕거리는 건 나 였다. 장생포의 명포수, 바다에서 날고 기는 황포가 고래 수염판에 걸려진 부유물처럼 묘하게 겉도는 것 같았다. 괜한 자격지심을 털어내듯 목을 흔들어 몸을 풀었다. 할일이 없어진 관리인이 주차 타워 안으로 돌아갔다.


솔피는 범고래다. 장생포에서는 범고래를 솔피라고 한다. 고래는 가족적이고 호기심이 많아 사람도 좋아하는데 범고래 솔피는 호전적이고 지능이 높다. 미끈한 검은 몸에 눈자위만 하얀 유선형 몸체는 검은 어뢰 같다. 작살잡이들은 고래를 두 가지로 나눈다. 이빨을 가진 것과 아닌 것. 수염판 고래와 이빨 고래. 수염판 고래는 물 속의 플랑크톤을 빗자루 같은 수염판으로 걸러서 먹고 살고, 이빨 고래는 다른 고기를 잡아 먹고 산다. 수염판이나 이빨이나 결국은 같은 이빨에서 변형 되었을 것이다. 어느 게 먼저이고 어느 편이 우수한지는 전문가들이 따질 일. 나는 이빨에서 그들의 안간힘을 본다. 살기 위한 고래의 투쟁이 이빨 속에 녹아 있는 것이다. 고래 생존의 전쟁과 역사가 내게는 수염판이고 이빨이다. 지금쯤 장생포 앞바다가 시끄럽겠다. 대봉호의 박선장은 어쩌다 들통이 났을까. 겉으로는 완전한 고깃배인데 말이다. 우리 배, 장생호도 그물을 걷고 하루의 조업을 마무리 하겠구나. 나와 백이 없는 채로. 솔피 강은 조업 뿐 아니라 잡은 고래에 대한 관리와 처리에도 철저했다. 판매와 유통을 점조직으로 꾸려 나도 구매자와 거래처를 전혀 모른다.

솔피 강이 노련한 선주답지 않게 놓친 고래가 아까워 뱃전까지 쾅쾅 두들긴 건 솔로가 처음이다. 하긴 꼬리에 작살까지 박았으니 그럴만도 했다. 나는 꼬리 근처의 상처를 보고 놈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성의 없이 ‘솔로’란 이름을 붙여 주었다. 내 작살을 맞고 달아난 고래는 여럿이지만 혼자가 되어 돌아 온 놈은 솔로가 처음이었다. 놈은 어쩌다 솔로가 되었을까. 내가 던진 작살 때문일까. 줄에 매달려 돌아온 빈 작살엔 고무 같은 고래 껍질이 덤퍽 묻어 있었다. 그랬는데 다음 해에 내 작살을 맞았던 놈이 나타났다. 솔로가 되어. 나는 꼬리 부근의 상처를 보고 녀석을 알아 보았다. 고래도 사람처럼 얼굴이 있는데, 어부들은 꼬리로 고래를 분간한다. 더러 고래에게 이름을 지어 주는 포수도 있지만, 내가 이름을 지어 준 고래는‘솔로’가 처음이다. 그리고 아마 마지막이 될 것이다. 바다의 장미, 솔로의 붉은 피는 멎어 있었지만 내가 던진 작살을 맞은 자리는 돌덩이처럼 움푹 살이 패여 있었다.

장생호가 한 무리의 범고래를 발견 했을 때 솔피 강은 새끼부터 치라고 했다. 새끼를 잡으면 어미는 저절로 따라왔다. 새끼를 지키려는 본능은 인간이나 똑 같았다. 고래는 보통 5~6마리씩 다니는데 그 중 새끼 고래가 한 마리라도 섞여 있으면 어부들은 로또를 탄 것처럼 흥분했다. 어리숙한 새끼만 잡으면 어미는 딸려 오기 십상이니까. 하지만 요동하는 바다에서 로켓처럼 빠른 고래를 잡는 건 포수의 능력이 아니다. 하늘의 뜻이다. 운과 때와 감(感)을 기다려야 한다. 솔피 강의 작살이 빗나가자 내가 곧장 작살을 날렸다. 공기를 가르고 날아간 작살이 어미 고래의 등을 스치면서 게임은 끝이 났다. 고래들은 순식간에 물 속으로 사라졌고, 장생호는 미친 듯 추격전을 벌렸다. 공기를 뚫은 내 작살은 고래의 꼬리 부근에 박혔다. 성난고래가 장생호를 뒤집은 것은 순간이었다. 숨막히던 추격전의 어느 순간 장생호가 한 쪽으로 뒤집혔다. 그 전에 거대한 충격이 배 옆구리를 강타했고 포수 3명이 바다로 튕겨 들어갔다. 솔피 강과 나와 백. 나는 두 번째 작살을 겨눈 채 바다에 처박혔다. 시커먼 포탄이 배 밑을 유선형으로 날아가는 것을 물속에 처박혀서 목격했다. 검은 몸피에 선명한 흰 반점의 눈은 살기로 탱탱하여 정신없이 수면으로 도망쳤다. 꼬리에 작살을 단 범고래의 살기가 전기처럼 물속을 짜르르 채웠다. 솔피 강과 백도 허겁지겁 뱃전에 매달렸고 시커먼 범고래가 하늘을 향해 치솟은 게 그 다음이었다. 활처럼 갈라진 검은 꼬리에서 붉은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바다의 장미. 꼬리 근처에 붉은 피가 꽃잎처럼 뭉클뭉클 솟아 나왔다. 그것은 내가 던진 작살에 아작난 상처, ‘바다의 장미’였다. 뱃사람들은 혈루병이 있는 고래가 붉은 피를 쏟아내는 것을 ‘바다의 장미’라고 했다.


나가사키의 일광이 수염판을 통과하는 물처럼 빠져 나간다. 물처럼 흘러나간 낮, 밝음, 빛의 자리에 어둠이 스민다. 물이 빠진 꼭 그만큼의 질량으로 어둠이 고개를 든다. 고래가 먹이를 고르고 물을 고르듯 어둠이 항구도시를 고른다. 어둠은 장생포와 비슷하다. 바다의 몸내는 육지의 어떤 냄새와도 다르다. 솔로가 장생포로 찾아 온 것도 물 냄새 때문일 것이다. 갯내는 해류에 따라 바뀌지만 고래는 그 변화를 알 것이다. 평생을 바다에서 살고도 내게 고래는 미지의 존재다. 무리 지어 다니는 고래 중 간혹 혼자 다니는 놈이 보였다. 나이 들어 집단에서 퇴출 당했거나 다른 수컷과의 경쟁에서 밀려난 놈이다. 병들어 죽을날을 기다리며 혼자 떠도는 고래나, 일행을 잃어 낙오한 고래도 있었다. 으쓸. 춥다. 일교차가 크다. 떠나올 때 장생포는 화창했는데 나가사키는 싸늘하다. 배가 고프다. 그 옛날부터 수많은 포수들이 날린 작살을 몸에 박고 달아난 고래들은 어찌 되었을까. 더러는 죽고 더러는 부상에서 회복되었겠지. 그러는 사이 고래는 이빨을 갈고 갈아 수염판을 만들고 일부는 강철 같은 이빨로 강화시켰으리라. 주차 관리인이 사라졌던 쪽에서 민혜가 나온다. 호텔 로비로 연결된 통로가 주차장 건물 안에 있었던 모양이다. 백과 일본인 주차 관리인도 민혜를 따라 온다. 빈방이 있대요. 룸을 세 개 잡았어요. 민혜가 차문을 열고 가방을 꺼내고 백도 운전석에서 자신의 색을 들어낸다. 주차 관리인에게 키를 건네고 우리는 민혜를 따라 호텔 로비로 간다.

식당이 어디에 있는지 민혜는 로비 직원에게 영어로 물었다. 직원이 약도를 꺼내 호텔 주변을 설명해주자 백도 같이 듣는다. 선글라스를 머리 위로 올린 민혜와 떨어져 나는 어둠에 싸인 나가사키를 내다 본다. 호텔 로비는 유리벽이라 바깥 거리가 그대로 보인다. 암홍색 어둠이 점점 짙어간다. 어제까지만 해도 내가 오늘 나가사키에 있을 줄 몰랐다. 나의 미래도 마찬가지다. 작살을 얼마나 더 잡을 수 있을까. 작살을 놓으면 무얼 해서 먹고 사나. 작살은 내게 이빨이다. 짐승의 생존 도구, 고래의 이빨. 민혜가 내게 카드 키를 내민다. 십 분 후에 로비에서 만납시다. 이제부터 사케 고래를 잡으러가는 거죠? 백이 제 방 키를 흔들며 키들거리고 민혜는 눈을 홀긴다.


어머. 거의 안 드셨네? 민혜가 내 그릇을 넘겨 본다. 배가 부르면 술 맛이 떨어져서 나는 일부러 조금만 먹었는데 민혜와 백은 라면 한 그릇을 다 비웠다. 민혜는 해물라면, 백은 돼지고기를 얇게 올린 라면이었다. 호텔을 나와 사케집을 찾다가 라면집에 먼저 들렀다. 일본 라면 먹고 싶어. 민혜의 한 마디에 우리는 주렴을 들치고 들어왔다. 안에는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멘 회사원 세 명이 만화책을 보며 라면을 먹고 있었다. 혼자 앉아 식사를 하는 직장인들이 피곤하면서도 편해 보였다. 입구의 서가엔 제법 많은 만화가 꽂혀 있고 메뉴는 라면과 주먹밥이 전부였다. 주먹밥은 틀로 찍어내고 라면은 토핑에 라 가격이 달랐다. 밑반찬은 생강절임 하나, 주문은 메뉴판의 사진을 손가락으로 찍으면 그만이었다. 달그락 거리는 소리, 후루룩 거리는 소리, 만화책 넘기는 소리 외에 거의 말이 필요 없는 가게다. 나도 이런 곳에 숨어 라면이나 끓이며 살까.‘솔로’처럼 고요히 명이 끊어질 날을 기다리며.

민혜가 카운터에서 라면 값을 계산한다. 저 영수증은 어떻게 처리 될까. 그녀의 통장엔 일반 생선을 경매한 금액과 선원들의 월급, 기름값 같은 비용만 남았다. 민혜는 불법 포경을 어떻게 생각할까. 불법으로 번 돈으로공부를 한 그녀다. 대학 공부를 한 자의 양심으로 불법포경이 괜찮은 건지 궁금하다. 나는 먹고 살 만만 벌겠다고 하다가 늙은 작살잡이가 되고, 같은 포수이던 솔피 강은 배 두 척을 가진 선주가 되었다. 솔피 강은 고래 장사에 철저했다.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장생호는 고래를 잡으면 먼 바다로 끌고 갔다. 그리고는 배 위에서 즉각 처분하는데 손발이 척척 맞았다. 선장은 키를 잡고 매의 눈으로 바다를 감시하고 선원들은 합동으로 해체에 매달렸다. 고래는 일사천리로 잘려 바다 냉장고로 직행했고 선원들에겐 당일로 현찰이 지급 되었다. 무거운 추를 달고 안전하고 완벽하게 밀봉되어 깊은 바다 속에서 신선하게 숙성되던 고래는 이윽고 밤이 깊어지면 수거조가 들어갔다. 실패는 거의 없었다. 좌표가 있고 부표가 있으니까. 고기를 끄집어 낸 수거조가 조용히 돌아오면 육지에 기다리던 거래처는 물건을 받아 사라졌다. 현금과 현물이 교환되고 어둠은 이 모든 걸 모른 척 했다. 나 역시 수거조나 거래처가 누구인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제 사케를 먹으러 갈까요? 라면 집을 나오자 백이 길 건너를 손짓한다. 그 쪽이 번화하고 사람도 많다. 아닌 게 아니라 뱃속에서 술고래인지 술세포인지가 아우성이다.

도꾸리에 담겨 나온 사케는 따뜻했다. 앙징맞은 도꾸리는 얄밉도록 작았고 사케 고래를 잡자던 백은 아사이맥주를 시켰다. 안주는 초밥과 꼬치 모듬. 술이 들어가자 초밥엔 손이 가지않고 식초에 절인 양배추가 상큼했다. 일본 여자 둘이 취해서 큰소리로 떠들었다. 취한 일본 여자를 보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라 은근히 귀를 기울이는데, 민혜가 사케를 제법 마신다. 일본 대단하다, 중국인이 들어와 개발한 짬뽕을 나가사키 짬뽕으로 만들고 포르투칼 선교사들에게서 배운 카스테라를 지방 특산물로 만들다니. 백이 하는 말이다. 나는 할 말이 없고 아는 것도 없어서 술잔만 비운다. 맞아. 외국의 좋은 점은 얼른 배워 자기 것으로 만드는데 선수야. 민혜가 맞장구 쳐준다. 우리나라와는 참 다르죠. 우리는 심수관이나 이삼평을 인정하지 않잖아. 여기선 신처럼 받들어 모시고. 백이 다 아는 얘기를 늘어 놓는다. 이곳에서 작살잡이는 어떤 대우를 받을까. 궁금하지만 입 밖으로 말하지 않는다.

또르륵. 잔이 비자 민혜가 채워준다. 사케 떨어지는 소리도 일본스럽다. 일본, 무서운 나라죠. 민혜가 꼬치 하나를 내 개인 접시에 덜어 준다. 약간 황송하다. 고기를 입에 넣고 음미해본다. 닭고기인지 양고기인지 모르겠다. 맛이 좋은지 나쁜지도 애매하다. 옛날에 여기 유명한 고래잡이 마을이 있었다면서요? 민혜가 포수는 알 거라 싶은지 내게 묻는다. 오래 전 얘기인데… . 마지못해 내가 입을 뗀다. 굳이 하고 싶은 얘기는 아니다. 고래 포살. 고래를 잡아 먹고 살아야 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작은 어촌 다이지에서는 고래철이 되면 온 마을이 들썩거렸다. 해안가 언덕에 ‘야마니’라는 조망대를 설치하고 고래가 오나 지켜보다가 고래가 나타나면 온 마을에 난리가 났다. 마을 배가 총출동하여 선단을 만들고 선단이 된 배들이, 개가 양떼를 몰듯 고래를 포위하여 한 쪽으로 몰고 갔다. 몰려간 쪽에는 그물을 실은 배가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 그물 배는 몰려온 고래 주변을 돌면서 그물로 고래를 포위했다. 삼나무 그물은 질기고 강해서 고래의 몸부림에 끄덕도 하지 않았다. 고래가 완전히 포위되면 작살잡이가 나서 첫 작살을 날렸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한 것. 그물에 걸려 몸부림치다 힘이 빠진 고래가 작살까지 맞아 기진하면 본격적인 포살을 시작했다. 한 사람이 바다에 뛰어들어 고래에게 다가간다. 그는 그물에 걸린 고래의 몸통에 기어올라 고래의 분수공에 나 있는 2개의 숨구멍에 작살을 박아 넣었다. 그런 다음 두 구멍 사이에 연결 통로를 만들었다. 기진 했던 고래가 고통으로 마지막 몸부림 치고, 어부는 밧줄을 끼워 고래의 숨구멍을 결박했다. 상처 투성이의 고래가 완전히 항복하면 긴 작살로 심장을 찔렀다. 그렇게 죽은 고래를 배에 연결하여 마을로 끌고 와 온 동네가 먹고 살던 시절이 있었다. 자기가 살기 위해 다른 생명을 먹는 행위는 언제나 먹먹하다.

휴~ . 민혜가 한숨을 쉬었다. 간단하게 하면 될 얘기가 길어졌다. 민혜가 사케 한 잔을 다시 부어준다. 황포님. 오늘 많이 드세요. 그녀의 목소리도 허랑하다. 울타리 너머로만 보아오던 여자다. 장미(薔薇)의 뜻이 담장의 아름다움이라 했다. 철장이 둘러진 담장, 가시 돋힌 장미 같던 민혜였다. 그럼에도 내 마음은 혈루병에 걸린 고래처럼 오래 굳지도, 멈추지도 않았다.

‘바다의 장미’처럼. 아하. 그런 전통이 있었구나. 그렇다면 요즘은 일본이 어떻게 고래를 잡아요? 백이 입가의 맥주 거품을 흐릅 빨아 먹은 후 묻는다. 일본은 통째로 고래를 퍼올리지.작살을 쓰지 않고 말야. 민혜가 나선다. 큰 배에서 음파탐지기와 소나를 동원해 대양을 누비며 고래를 잡아. 소나로 고래의 위치를 파악하고 물 속에 청음기를 넣어 소리로 고래를 찾아낸다고. 그런 다음 넓게 포위해서 바다에 물감약을 던져 넣지. 노랗거나 파란 물감이 바닷물에 마구 퍼지면 당황한 고래가 길을 잃고 허둥거리며 포위망 속에 갇혀. 그때 대형그물로 떠올리지.걸리면 살아남는 고래가 없어. 어미, 새끼 가릴 것 없이 통째로 끌려 올라가는 거야. 장생포에서처럼 한, 두 마리가 아니고 무리로. 작살을 맞고 달아날 여지도 없다고. 나쁜 놈들. 백이 화를 낸다. 그러고도 시험포경이라잖아. 민혜가 덧붙인다. 그들이 뿌리는 독약물과 청음기, 소나때문에 고래가 불임이 되고 병신이 되고 해안으로 올라와 자살까지해도 까닥 안해. 장생포에선 작살로 몇 마리만 잡아도 그린피스가 나타나고 언론에서 떠들고 난리를 치면서 일본 같은 나라는 건드리지도 않는다니까. 나라가 힘이 있으니까. 그래서 일본인들이 장생포 고래에 환장하는 거야. 포수들이 작살로 잡은 고래가 스트레스를 덜 받아 영양가 높고 맛있다는 걸 알거든. 좆 같은 세상이야. 민혜의 욕설에 나는 놀라고 백은 히히 웃는다. 그러니 황포님. 오래 오래 사셔야해요. 미스터 백은 아직 멀었어요. 무슨 포수가 때를 기다릴 줄 모른다고요. 미스터백은 조금이라도 괜찮은 곳이 나오면 금방 도망 갈 거예요. 아까 라면집에서도 눈이 반짝반짝하던 걸요. 이게 괜찮나 싶어서요. 민혜가 휴지 한 장을 톡 뽑아 코를 팽 푼다. 백은 여전히 실실거리는데 내가 찔끔한다. 백도 그랬나. 나처럼 염탐했단 말이지.

민혜가 빈 사케 병을 쳐들며 종업원을 부른다. 내가 말린다. 그녀는 취했다. 욕을 뱉고 눈은풀렸다. 공중에 들린 도꾸리 병을 빼앗아 테이블 위에 내려놓자 민혜가 나를 쏘아본다. 나도 마주 눈에 힘을 준다. 그녀의 눈이 술기로 빨간 몽돌 같다. 속이 찌르르 울려서 먼저 눈길을 돌리고 만다. 황포니임. 민혜가 은근하게 나를 부른다. 그녀는 모를 것이다. 그녀가 초등학생 때부터 내가 좋아했던 것을. 똘똘하고 냉정한 계집애 였다. 내게 눈꼽만큼도 관심이 없었다. 하긴 보잘 것 없는 어촌 꼬맹이에 누가 관심을 가지랴. 부디 몸조심 하세요. 민혜가 달큰한 술내를 풍기며 내귀에 소근거린다. 무슨 소리인가하여 돌아보니, 스르르 눈을 감는다. 붉은 몽돌에 흐르던 윤기가 가려진다. 아. 신기하기도 하다. 그녀의 감은 눈에 슬픔 같은 게 어린다. 감은 눈으로도 이런 감정이 드러나다니! 생명이란 정말 신기하다. 나는 숨을 멈추고 그녀의 얼굴을 훔쳐본다. 씁쓸한 아니 쓸쓸한 슬픔 같은 게 물처럼 번진다. 민혜가 갑자기 눈을 뜬다. 일본인들이 황포님이 명 작살잡이인 걸 알면… . 그녀의 눈이 또록해진다. 황포님을 산 채로 잡아 박물관에 전시할지도 몰라요. 백이 왁 웃음을 터트리고 나는 무안해진다. 어이. 그만 가자구. 백에게 눈을 부라린다. 선주님이 너무 취했어. 백이 접시에 남은 연어초밥을 입에 구겨넣은 후, 민혜를 일으킨다. 그만 가입시다. 선주니임. 일어나요오. 연어 초밥 때문에 백의 발음이 물컹하다.

고래 이빨은 언제 볼 건데? 술기 오른 몸에 밤바람이 상쾌하다. 백이 민혜를 부축했다. 민혜는 백의 허리를 껴안고 비칠거리는데 나는 그녀의 몸에 손가락 하나 댈 수가 없다. 부축이건 무엇이건 간에. 백이 그녀를 안다시피 하고 걷자 괜히 심술이 나서 고래이빨은 언제 보냐고 시비를 걸었다. 고래 이,빨,요? 대답은 민혜가 한다. 백의 허리에 매달려 있던 민혜가 발을 멈추고, 내일 데지마 상관(商館)에 갈 거예요. 거, 거기 고래 이,빨,이 있거든요. 풀어진 음성으로 덧붙인다. 이, 일각고래 이빨이 거기 있다고요. 이 나이에 어줍잖은 질투라니 부끄러워진다.

아무래도 그녀를 같이 부축해야겠다 싶어 백의 반대편으로 다가선다. 데지마 상관은 아직 보수 중이라는데? 백이 민혜에게 말한다. 인터넷으로 얻은 정보겠지만 백은 아는 것도 많고 선주에게도 반말이다. 민혜는 백의 반말에 개의치 않는다. 걱정마. 고래 이빨은 볼 수 있을 거야. 일본 사람들 늘 보수 아니면 복원이지 머. 민혜는 백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쥐어 박으며 장난까지 친다. 고래 한 마리가 나타난 게 그 즈음이다. 호텔로 가는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상점가에서 였다. 멋을 부린 고래 경(鯨)자가 얼핏 보였다. 파란 바탕에 검은 색으로 그려진 휘장 속의 고래는 밤바다를 헤엄치는 것 같았다. 민혜가 쪼르르 달려갔다. 어? 너 누구야? 언제 왔어? 그녀가 휘장 속의 고래에게 말을 걸었다. 고래고기를 파는 술집 같았다. 고래는 분수공의 양 갈래로 물을 품으며 애교를 떨고, 백이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그러자 민혜가 휙 뿌리치고는 가게 안으로 쏙 들어갔다. 배도 부르고 술도 불렀다. 장생포의 작살잡이가 나가사키에서 고래 고기를 사 먹을 필요는 없지만 민혜는 잡아야 했다. 백이 먼저 가게로 따라갔다. 안에서 손님을 반기는 일본어가 들려왔고 나도 들어 갔다. 술집치고는 다소 밝았다.

민혜는 자주색 기모노를 입은 주인 앞에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술집이 아니라 고래 기념품 가게다. 사방에 고래 모형이 주렁주렁했다. 긴수염고래, 혹동고래, 밍크와 돌고래, 낫돌고래와 참돌고래, 향유고래와 범고래가 보였고 내가 모르는 고래도 있었다. 고래뼈로 만든 장식품과 펜던트, 열쇠고리와 고래 목걸이, 귀걸이, 고래 그림과 고래 사진이 고래 백화점 같았다. 백도 눈이 휘둥그레 졌다. 바다에서 사라진 고래들이 모두 모인 듯 했다. 나는 자연은 그대로 두자는 보수주의자다. 고래는 적당히 잡아야 생태계가 건강해진다. 그래야 그 아래의 고기들이 살아 남는다. 최상위 포식자인 고래는 엄청난 양의 먹이를 먹어치워서 그대로 두면 그 밑의 생태계에는 재앙이다. 하지만 현실은 자연이 아닌 힘의 바퀴로 돌아간다. 고래는 무분별한 포획이나 남획이 아니라 인간에 의한 오염, 무분별한 기계의 사용으로 줄어들었다. 고래를 병들게 하고, 임신과 출산에 막대한 스트레스를 주어 치명적 악몽을 선사한 강대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협상하고 타협할 뿐이다. 사실 이제 고래는 잡을 필요가 없다. 하나도 버릴 것 없던 고래는 공업의 발전으로 대체 가능해진 지 오래다. 고래를 원하는 곳은 자본가, 식량이 아닌 호사가의 즐거움을 위해서이다. 강대국은 시험, 과학포경이란 허울로 포경금지의 그물을 빠져나가지만 사실 고래는 불량식품이다. 수은 등 중금속에 오염되었고 좌초한 고래는 더 심각하다. 최상위 포식자인 고래가 스스로 해변에 올라와 자살 할 땐 오죽 했으랴. 기생충에 감염되고, 병든 고래들이 숨이라도 편히 쉬러 해안으로 올라 죽는 것이다. 환경단체에서 고래를 치료해 살려주어도, 다시 육지로 올라와 죽음을 기다리는 건 그래서이다. 하지만 이익을 노리는 자본은 자살한, 스트랜딩한 고래까지 눈독을 들인다. 먹지 말라면 더 먹고 싶어 안달하는 미식가들 덕분에 불법은 춤을 춘다. 밍크나 돌고래까지 고급 어종으로 둔갑해 요릿집에 상납된다. 관심있는 나라나 환경단체는 껄끄러운 상대는 접어두고 이길 가능성이 있는 대상부터 공략한다. 강대국은 이길 수 없으니 수공업적 포경을 하는 작은 나라에 감시의 칼날을 세우는 것이다. 예부터 힘 없는 것들은 총알받이 신세이곤 했다.

이건 뭐지?
백이 무언가를 골똘히 본다. 상아로 만든 보검 같다. 아, 그거? 진열장 안의 장검(刀) 같은상아를 보고 민혜의 얼굴이 환해진다. 그게 바로 일각고래의 뿔이야. 유니콘의 뿔이라고. 내일 데지마 상관에 가서 보려 했는데 여기도 있네. 그녀가 좋아라 한다. 술이 깨는 모양이다. 유니콘의 뿔? 나도 다가 간다. 이거 엄청 비싼 거야. 민혜가 속닥거린다. 일각고래의 뿔은 소문으로 들었다. 정확히는 뿔이 아닌 이빨이다. 북극에 사는 고래의 어금니가 상아처럼 길게 튀어나온 것이다. 북극 고래는 유빙을 뚫어 숨을 고, 먹이를 잡고, 적을 물리치니 어금니를 작살처럼 변형시킨 것이다. 뿔이 아니라 작살인데? 백이 주먹을 쥐었다 펴며 작살을 잡는 시늉을 해보인다. 그러고보니 정말 작살이다. 포수들의 작살. 포수는 살로 먹이를 잡고, 경쟁자를 물리쳐, 숨을 쉬니 작살이 맞다. 나도 고개를 끄덕인다. 와. 손이 근질근질하네. 백이 작살의 손잡이 부분을 진열장 위에서 가늠한다. 맞아. 꼭 맞네. 지난 번에 내가 잃어버린 그 작살이야. 능청을 떨자 강이 받아준다. 그래? 그럼 이거 우리 꺼네? 우리가 가지고 가야겠네. 카운터의 주인이 우리를 주시한다. 여차직하면 달려올 기세다.

이거 수컷이죠?
민혜가 불쑥 묻는다. 작살을 맞고 도망 온 동족을 보고 고래들이 궁리 했을 거예요. 우리도 이런 게 있어야 한다고. 그래서 수컷의 이빨을 이렇게 단련시킨 거죠. 아주 오랫동안, 그야말로 이를 갈면서. 암컷은 새끼를 잉태하고 종족을 보존해야 하니까 제외시킨 거고요. 과연 솔피강의 동생 다운 추리다. 나도 모르게 이를 갈아본다. 더글더글. 아래 윗니가 잘 맞물리지 않는다. 그래도 참고 갈아본다. 어딘가 이가 근질거리는 것도 같다. 고래도 손이 있으면 인간처럼 도구를 만들었을 거다. 손이 없으니 자신의 신체 중 가장 강한 이빨, 어금니에서 방법을 찾았겠지. 어머, 저거 좀 보세요. 민혜가 내 팔을 톡 친다. 진열장 속에 누워있던 뿔이 들석거린다. 마치 일어서려는 듯. 어? 백도 신기해한다. 카운터의 주인 여자가 바닥으로 스르르 내려 앉는다. 벽에 걸린 액자 두어 개가 들썽이고 천장의 고래 모형은 부르르 몸을 떤다.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지진이에요! 백의 외침에 민혜의 눈이 팽팽해진다. 아니다. 고래가 작살을 본 뜬 게 아니고 인간이 일각고래의 뿔을 보고 모방했을 거다. 아니면 각기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도구가 우연히 일치했거나. 백이 출입문 쪽으로 달아나자 얼결에 따라 가던 민혜가 나를 돌아본다. 아아. 이빨 하나로 남은 고래야. 어찌하여 지구 반대편의 이 먼 나라, 작은 항구까지 흘러와 뿔 하나로 이리 누웠느냐. 전 생(生)을 이빨 하나에 처연히 담고 말이다. 장생포의 작살잡이가 다리를 벌려 중심을 잡자, 발 밑이 고래등처럼 움찔거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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