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문재인 대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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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현 정치부장

43일 앞 대선의 관심사가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가 예상대로 대통령이 될 것인가'에 집중되고 있다.

김대중과 이회창(1997년), 노무현과 이회창(2002년), 박근혜와 문재인(2012년)처럼 보수와 진보 후보가 1 대 1 구도를 만든 뒤 51 대 49의 치열한 진영싸움을 벌였던 역대 대선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대선 관심 '문재인 대통령'에 집중
과거 51 대 49 진영싸움 사라져

무기력 보수에 文 장점 부각 속
밑바닥에선 "文 절대 안 돼" 여론

27일 호남경선 60% 득표 분수령
대권까지 쉽지 않은 여정 될 것


2012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선거 환경의 불리함을 토로했던 문재인은 역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어떤 변수에도 흔들리지 않는 대세론을 구가하고 있다.

일각에선 지금의 문재인 대세론을 이회창 대세론에 비유하지만 적절치 않다. 당시엔 진보진영 김대중 및 노무현 개인의 고정 지지층과 선거 환경의 유동성, 후보의 표 확장성 등 대세론을 깰 만한 여러 변수가 상존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보수진영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8 대 0 전원일치 파면 결정 이후에도 활로를 찾지 못한 채 무기력한 모습으로 일관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새누리당과 뭐가 달라졌는지 알 수 없는데 간판만 바꿔 단 채 다시 힘을 모아 달라 하고, 박 전 대통령을 추종하던 바른정당 세력들은 최순실 사태가 터지자 우린 그럴 줄 몰랐다며 어려움에 처한 당을 뛰쳐나가는 비겁함을 보였다. 게다가 판을 뒤집을 만한 신선하거나 혹은 감동적인 후보도 찾기 어렵다.

이같은 보수진영의 지리멸렬함 속에 문재인의 장점은 상대적으로 도드라져 보인다. 문재인에게는 노무현이 물려준 확실한 지지층이 있고, 혹독한 검증 과정을 거쳐 털어도 먼지 안 나는 도덕성이 있다. 진보진영의 맏형으로 타 후보들과의 사이엔 '너희들은 다음에'라는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고, 대권 재수생으로 '준비된 대통령 후보'라는 매력적인 슬로건을 사용할 수도 있다. '문재인이 대통령이 될 것이다'는 이런 환경에서 대세론으로 공고화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은 절대 안 된다'는 정반대의 목소리는 밑바닥에서 더 확산되고 있다. 문재인에 대한 비호감도가 호감도보다 항상 앞서는 여론조사는 이를 잘 뒷받침한다. 열렬한 지지층이 있는 반면 죽어도 싫다는 비토층이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것이다.

문재인 비토층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패권화되어 가고 있는 '문빠'들의 행태와 보복정치의 망령이다. 정치인 문재인은 태생적으로 가슴에 한(恨)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그의 정치 입문이 노무현의 상주(喪主)로서 비롯됐고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출마한 지난 대선 패배는 시간이 흐를수록 권력의 냉엄함을 직시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실장, 야당 대선후보를 거쳤지만 실상 그의 정치 이력은 이것이 전부여서 미천하다. 짧은 정치 이력에 굳건해진 권력 의지가 합쳐지면서 문재인과 그 주변 세력들은 권력만 잡으면 된다는 식의 패권화 경향을 보이고, 문재인을 지지하지 않으면 모두가 적이라는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대상과 범위가 모호한 문재인의 '적폐 청산'이 상대와 나를 이분법으로 가르는 보복정치의 칼날이 되어 또다시 나라를 두 동강 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여기서 비롯되는 것이다.

대선에 임하는 문재인의 말이나 행동도 과거 정치인의 틀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의 대선 캠프는 대규모 세를 과시하는 옛날 방식과 철저히 닮아 있고, 부산에서의 인물 영입은 정치 일선에서 사라졌던 구시대 인사들이 버젓이 실세 행세를 하며 또 다른 구태 인사를 끌어들이는 볼썽 사나운 꼴을 연출하고 있다. 여기다 '누구누구를 만나기 위해서는 줄을 서야 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비선 실세들의 망령이 아른거리기까지 하니 문재인이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할 수 있을까 물음표가 붙는 것이다.

학자들은 정치에도 균형이론이 작동한다고 한다. 여론이 어느 한쪽으로 일방적으로 기울면 균형을 맞추고 싶어하는 본능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균형이론도 대세론을 타고 있는 문재인에게는 달갑지 않은 요소다.

결국 '문재인이 된다'와 '문재인은 절대 안 된다'의 싸움인 이번 대선의 1차 분수령은 오늘 발표되는 민주당의 호남 경선 결과이며 그 기준점은 안철수가 광주·전남 국민의당 경선에서 얻은 지지율 60%가 될 것이다. 문재인이 1차 관문을 통과한다면 본선에서는 '문재인은 절대 안 된다'는 표심이 한 후보로 결집하면서 1 대 1 구도가 될 가능성이 있고, 여기다 영호남 표의 선택에 따라 여론은 출렁일 것이다.

'대통령 문재인'은 이처럼 쉽지 않은 여정을 앞둔 채 오늘 호남에서 '운명'의 첫 주사위가 던져진다. jhno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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