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영 칼럼] 망령으로 떠도는 지역감정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이준영 논설위원

'선동(煽動)'이란 단어가 풍기는 이미지는 음산하다. 사실을 왜곡하거나 속임수를 써서 남을 조종하는 뜻이니 그렇다. 남의 가슴에 상처를 주고, 남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일이다. 이에 당한 사람의 고통과 치욕은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이 불편함을 정치공학적으로 살펴보면 몸을 옥죌 정도다. 선동은 집단 편견을 밑바탕에 둘 때 더욱 위력을 발휘한다. 구성원들의 막연한 불안감을 상대방에 대한 근거 없는 증오심으로 전이해서다. 특히 선동은 실행자가 성인군자인 척하면 내뱉는 큼지막한 거짓말이라는 뉘앙스도 가진다. 선동가들은 문제만 만들려고 하지 해결은 회피한다는 점에서 그 독성은 자못 심각하다.

한국 현대 정치사 얼룩지게 한 
지역 분열 선거는 망국적 고질 
대선판에 어김없이 나타나 실망 

시민들 이를 식별할 능력 충분해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정치인들
정신 안 차리면 방출도 각오해야

이처럼 부정적 인상으로 가득한 선동의 뜻을 개괄하자니 작금의 정치판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지역감정 조장 발언들은 가슴을 후벼판다. 이번 대선판에서도 '부산 대통령', '호남 대통령', '충청 대망론', 'TK(대구·경북) 적자' 등이 어김없이 재현됐다. 모두 지연(地緣)을 득표 전술로 삼는 고질이다. 고장 난 스피커에서 울려 나오는 철 지난 노래 같은 소음이다. 이는 고향 사람의 눈을 현혹하는 선동과 모략에 가깝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지역 차별은 수많은 사람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순간 최근 관람한 영화의 한 장면이 연상된다. '더킹'에서 양아치 검사역인 태수(조인성 분)가 고시 합격 전 입대하는 신이 그것이다. 여기서 전라도 태생인 태수는 끝까지 서울 출신이라고 우긴다. 군사 정권 아래에서 지역 차별이 얼마나 무섭게 개인을 덮쳐오는지를 권력지향형인 그가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망국적인 지역 균열의 책임은 온전히 정치인들에게 있다. 각 정당 및 정당 세력들이 반대파를 분쇄하고 자신의 세력을 공공화하기 위해 이런 분열을 고의로 조장한 것이다. 여기에는 민주화 세력, 산업화 세력 누구나 예외가 없다. 말로는 국민 통합을 외치면서도, 이들은 언제나 지역에 기반을 두고 이합집산하는 행태를 보여왔다. 이런 사람들이 이번 대선에서도 마찬가지 계략을 꾸미고 있으니 몰염치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번 선거가 어떤 선거인가.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으로 시행되는 5월 대선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기까지 한국 정치가 보여준 모습은 참으로 실망스러웠다. 그들은 절묘한 대의정치의 정수를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광장 정치에 편승하려는 용기 없는 정치인만 보일 뿐이었다. 이를 두고 그들이 민심을 제대로 수용했다고 반박한다면, 정치인의 존재 이유 자체를 의문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대선판에서 다시 지역감정 발언을 하면서 본래 정체가 들통나 버렸다. 그간의 광장 민심을 제대로 읽지도 못했고, 읽을 의향도 없었다는 증거이다.

지금 정치인들은 착각하고 있다. 바야흐로 계절은 봄인데, 이들은 아직도 지역감정이란 두꺼운 외투를 벗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분석하는 사회심리학자들이 있다. 지연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에 대해 편견을 갖거나 부당하게 편애를 베푸는 자는 정신적으로 병들어 있다고. 지난 몇 달간 나타난 민도는 이런 병자들을 골라낼 시민들의 안목을 입증했다. 지역 간 갈등을 이용해 대권을 차지하려는 작전이 패착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물론 선거판에서 어느 정도의 여론 조작이 동원되는 게 현실이다. 이를 전적으로 부정하려는 건 아니다. 정권 획득이 최종 목적인 정당이 정치 공학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건설 현장 종사자에게 손에 흙을 묻히지 않고 집을 지으라고 할 수 없는 이치와 같다. 하지만 이것이 불량 건자재를 사용하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지역감정은 해체하고 제거해 영원히 없애야 할 1급 발암물질인 석면재이다.

공자가 제자들과 공부하고 있는데, 담 너머로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창랑(滄浪)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네." 공자는 이를 듣고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갓끈을 씻느냐, 발을 씻느냐 하는 것은 물 스스로에게 달려 있구나"라고 말했다. 맹자 '이루상(離婁上)'에 나오는 이야기다.

정치권이란 물이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선동과 모략을 진정 버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국민은 세족(洗足)하기는커녕 그 구정물을 아예 시궁창에 버릴지도 모른다.

  gapi@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