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주의 고전과 세태] 12. 若烹小鮮(약팽소선)-(정치는) 작은 생선 굽듯이<도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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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儒家)의 대척점에 있는 도가(道家) 사상의 정수를 담은 <도덕경>은 '인위의 정치' 대신 '무위의 정치' 내지 '가만둠의 정치'를 표방한다. 그 대표적인 비유가 '작은 생선 굽기'이다. <도덕경> 제60장에 나온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굽는 것과 같다(治大國若烹小鮮(치대국약팽소선)).' 작은 생선을 굽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전어를 석쇠 위에서 구울 때를 생각해보면 짐작이 갈 것이다. 작은 생선은 배를 따서 내장을 꺼내거나 뼈를 추리지 않고 통째 굽는다. 구울 때도 쓸데없이 이리저리 뒤집어서는 안 된다. 가뜩이나 작은 생선이 으깨져 먹을 게 없게 되기 때문이다. 잘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단번에 뒤집어 주면 된다.

도가의 정치철학 정수
'가만둠' '무위' 사상 상징

시시콜콜 국민 삶 간섭하거나
제도 법률 만능주의는 부작용

대선 공약 백화만발 속
'맹맹한' 공약에 관심을

정치도 이렇게 하라는 것이다. 한꺼번에 제도나 법령을 확 바꿔버리거나 시시콜콜 국민 삶을 간섭하는 정치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 특히 큰 나라(우리나라도 인구나 경제 규모로 보면 대국이다)를 다스릴 때는 '가만둠의 정치'가 필요하다는 게 노자의 생각이다. 강력한 중앙집권 통치 체제 대신 각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될 수 있는 대로 중앙정부의 간섭을 배제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만둠'이 방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시 작은 생선 구울 때를 생각해보라. 자칫 한눈팔다가는 까맣게 태워 먹기 일쑤다. 옆에서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다가 익숙한 솜씨로 뒤집어줘야 한다. 타이밍이 매우 중요하다. 이렇듯, 정치 또한 타이밍과 노련함을 필요로 한다.

<도덕경>에는 약팽소선과 같은 맥락의 정치관이 몇 가지 나온다. '맹맹한' 정치도 그중 하나. '정치가 맹맹하면 백성이 순박해지고, 정치가 똑똑하면 백성이 못되게 된다.' 물샐틈없이 완벽한 듯한 제도와 법률을 구축하는 정치가 바람직할 것 같지만 그럴수록 국민의 삶은 더 팍팍해진다는 뜻이다. 이와 함께 '검약'의 정치가 강조된다. '사람을 지도하고 하늘을 섬기는 일에 검약하는 일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물론 복잡다기하고 다양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21세기 국가 경영을 '무위의 정치'로만 감당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대신 현대 정치가 가지는 외부적인 해결책의 한계를 인정하고 국민들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열린 정치를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좋을 것이다.

'장미 대선'을 앞두고 예비후보들이 내놓는 공약이 백화만발이다. 화려한 공약일수록 공약(空約)이 될 공산이 크다. 수사에 현혹되지 말고 물처럼 '맹맹한' 공약에 관심을 가져보는 건 역설일까. 논설위원 hoh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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