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현대판 소작인' 구원할 자 누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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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국 재테크팀장

내달 초 전세 계약 갱신을 앞둔 직장인 영수(44) 씨는 당장 6000만 원을 마련해야 한다. 해운대 아파트 전세 가격이 2년 만에 수직 상승했기 때문이다. 부담이 덜한 곳으로 옮기고 싶지만 아이들이 전학을 원치 않아 고민이다. 영수 씨는 "남부럽지 않은 직장을 다니며 열심히 일하고 아껴 모았지만 은행 대출까지 받아야 되는 실정이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해 은퇴해 프랜차이즈 식당을 개업한 정훈(55) 씨 부부는 하루 열두 시간 넘게 일해 집에 가져 가는 돈이 한 달에 고작 200만 원 정도다. 월 매출이 1000만 원이 넘지만 재료비와 인건비 가게세를 빼고 나면 손에 쥐는 게 없다. 정훈 씨는 "가게세가 월 300만 원이 넘는 데 우리 부부가 일해서 버는 돈보다 건물주가 앉아서 버는 게 더 많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파트 전세 가격 2년 새 수직 상승
자영업자 가게세 수입보다 많아 고통
일하는 서민들 '현대판 소작농' 전락
세제 손보고 공급 늘려 시장 안정화를


대한민국이 부동산 공화국으로 전락해 버렸다. 한 시민단체는 지난 30년간 임금이 6배 오르는 동안 아파트 등 부동산 가치는 임금 상승치의 43배로 뛰었다고 발표했다. 공동체에서 창출된 부의 가치가 대부분 부동산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집과 상가를 소유하지 못한 대부분의 서민이 '현대판 소작인'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한탄이 터져 나오고 있다.

경제가 성장하면서 소득이 오르긴 했지만 부동산 자산가치는 더 빨리 부풀어 올라 실질 임금 수준은 뒷걸음질 쳤다. 정부가 임금 노동자나 자영업자를 배려하지 않고 부동산 자산가들을 위한 정책을 편 탓이다.

역대 정권은 하나같이 정치적 목적에 따라 주택을 투기의 대상으로 변질시켰다.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한마디로 요약하면 '빚 내서 집사라'였다. 이런 정책의 결과로 과거에 형성된 거품이 채 빠지지 않은 상태에서 주택 가격은 다시 천정부지로 올랐다. 집 가진 자와 집 없는 자의 양극화가 더욱 커졌다.

양극화는 주택 부분에서만 벌어진 게 아니다. 토지 소유 역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가속됐다. 개인 토지는 상위 10%가 전체의 65%를 소유하고, 법인은 상위 1%가 전체의 75.2%를 소유하는 토지 집중 현상이 초래됐다.

부동산 임대료 같은 불로소득이 과도하면 건전한 노동의 가치를 하찮은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는 윤리적으로도 건강하지 못할뿐더러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을 방해한다. 악순환의 과정은 이렇다. 공동체가 생산한 부가 부동산 소유자들에게 과도하게 쏠리면서 임대료를 내는 중산층과 서민들의 가처분소득이 줄어들게 된다. 이는 소비 부진과 기업 매출 저하로 이어지는 불황의 고리를 만들게 된다.

임대료에 허리가 휘고 있는 중산층과 자영업자를 구하기 위해 과도한 임대료 수익을 제한해야 한다. 지금처럼 소수의 자산가에게만 유리한 정책을 바꿀 때가 됐다.

다행인 점은 대선 정국이 본격화되면서 여러 후보들이 보유세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보유세 부담이 커지면 투기가 사라지고 자연스럽게 부동산 가격과 임대료도 내려갈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그러나, 자산가들에게 부과된 세금 부담이 고스란히 임차인에게 전가되는 것을 여러 차례 봐 온 터라 걱정이 앞선다.

세제 정책과 함께 공급 차원에서 부동산 문제를 푸는 고민도 해야 한다. 저렴한 양질의 주택이 많이 공급된다면 부동산 시장은 '공급과 수요'의 법칙에 따라 자연스럽게 안정을 찾을 것이다.

올 들어 부산시가 추진하고 있는 뉴스테이 정책을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시의 목표대로 2020년까지 저렴하고 질 좋은 기업형 임대주택 2만 가구가 공급된다면 부산의 주택 가격이 15% 정도 내려가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환경훼손 우려가 없지 않지만, 부동산 광풍에 직면한 서민들의 고통은 그보다 더 크다. gook7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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