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학림 칼럼] '장미 대선'의 과제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최학림 논설위원

좀 큰 얘기를 해 보자. 예견한 대로 5월 9일로 대선이 확정됐다. 장미가 피는 계절의 '장미 대선'이라는 말이 아름답다. 이번 장미 대선의 역사적 과제는 크다.

우리의 근현대는 숱한 곡절로 점철됐다. 한국의 근대는 식민지의 큰 멍에를 썼다. 그 멍에는 전쟁과 분단의 고통으로 이어졌다. 유럽의 경우 혁명과 반혁명, 1·2차 대전의 풍상을 처절하게 겪으면서 복지국가와 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다듬었다. 그러나 문제는 성찰에 들어간 유럽과 달리 패권 다툼을 시작한 소련과 미국이었다. 저 둘이 야기한 냉전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면서 우리는 세계사적인 전쟁을 치른 분단국가가 된 것이다. 이 일도 우리의 성정이 뜨겁기 때문이었을까. 여하튼 폐허 속에서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 냈다. 놀랍고 기적적인 것이었으며 압축적인 것이었다. 추격산업화, 추격민주화라고도 한다.

산업화·민주화 기적 일군 우리
2가지 시대적 사명 안고 있어

진정한 민주주의 내실화 기해야
사회·경제 불평등 해소 큰 문제

핵심은 행복하게 잘 살자는 것
공동체의 여유 있는 삶 회복해야


김영삼 정부가 세계화를 추진하던 1996년 '제2의 일본'이란 소리를 들으면서 OECD에 가입했을 때 선진국에 다 갔다고 여겼다. 그런데 'IMF'를 맞은 것이다. IMF를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세계화, 개방의 파고를 준비 없이 치르면서 우리 사회는 불평등 사회가 됐다. 그 실체가 신자유주의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김대중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진보·보수 정부를 막론하고 모두가 불평등을 가속화시켰다. 88만 원 세대, 비정규직, 청년실업, 헬조선, 금수저·흙수저의 세습사회…. 불평등의 핵심은 공정하지 못한 경쟁이요, 기득권 고집이다. 분명 나라는 잘살게 된 것 같은데 우리는 불행하다는 희한한 역설의 덫에 걸려 있다. 자살률·출산율·65세이상빈곤율 OECD 국가 중 최악. 근로시간은 OECD 34개국 중 꼴찌 다음인 연 2113시간(2015년)이다. 1년에 독일보다 4.2개월, 일본보다 2개월을 더 일하고 임금은 저들보다 훨씬 적게 받는 나라가 한국이다. 당신은 행복하신가, 이런 나라에서 아이를 낳고 싶은가, 라는 물음에 한국 사회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들의 민주주의는 안녕하신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났을 때 독일은 핵 발전을 포기했다. 독일 메르켈 총리는 원래 핵 발전 옹호론자였다. 국민 여론이 탈핵을 택하자 그에 따랐던 것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이 의논하면서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정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체제가 민주주의다. 인간 사회의 힘은 소통의 능력이요, 합의에 이르고자 하는 의지라고 했다. 우리는 어떤가. 시끄러운 소리 하지 말라고 한다. 기득권이 벽을 치고 있는 것이다. 권력이 제멋대로 놀음을 하기 때문이다. 혹자는 지금의 5년 대통령제를 '5년짜리 유랑 도적단'이라고 한다. 4대강 사업에서 보듯 다 해 먹은 뒤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내뺐기 때문이다. 또는 안하무인의 권력을 행사하는 '선출된 군주정'이라고 한다. '군주'는 불통과 무능 속에서 적폐를 쌓고 비선 실세의 국정 농단을 야기하다가 탄핵됐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저 무서운 짧은 문장에 깃든 민주주의에 다시 숨을 불어넣어야 하는 지점에 우리는 서 있다.

한국 문제는 크게 2가지로 요약된다. 민주주의를 더욱 민주화시키는 것과 불평등의 해소다. 그런데 이번 장미 대선에서 불평등 해소를 전면에 내건 이도 없다. 다만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던 박원순 서울시장이 '위코노믹스(Weconomics), 우리 모두의 경제'란 개념으로 '불평등과의 전쟁'을 선포했었다. 민주주의 확대와 관련해서는 권력의 지방 이양이 더 많이 이뤄져야 한다. 국가가 설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과 마을이 더욱 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함부로 멋대로 휘두르는 '위임 권력'을 소환하는 직접 민주주의도 더욱 강화시켜야 한다. 이 모든 것의 핵심은 무엇보다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이 그것이다.

정신 없이 살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이러는지 모르겠어? 내 코가 석 자인데 앞집에 누가 사는지 어떻게 알겠어? 통일을 왜 해야 하는 거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왜 안되는 거야? 우리는 이런 질문조차 망각하면서 너무 빨리 달려왔다. 장미 대선이 공동체 정신, 삶의 행복, 여유가 있는 삶을 회복하는 정치적 전기가 되기를 간절히 빈다.

theos@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