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대통령과 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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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충 편집3팀장

어릴 때 무엇이 되고 싶냐고 꿈을 물으면 몇몇 아이들은 으레 "대통령"이라고 답했다. 그 대통령이 헌법상의 대통령을 가리킬 수 있지만, 그것보다 막연히 '최고'를 지향한 바람이었을 개연성이 더 높다.

대통령이 최고의 지위를 상징한다는 환상은 단지 꿈 많은 아이들만의 것은 아니었다. 현실에서도 대통령은 행정수반보다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종종 호출됐다. 서태지가 한때 문화대통령으로 불린 것도 행정수반이 아니라 가장 영향력 있는 대중문화 스타였기 때문이고, 네이버 국어사전에 신조어로 당당히 오른 '뽀통령' 역시 어린이의 마음을 사로잡은 캐릭터로서의 뽀로로를 지칭한 용어였다.

'법 앞의 평등' 확인한 3·10 선고
헌법 못 지키면 대통령도 파면
적임자 자임하는 대선 후보들
마음속 깊이 국민 두려워해야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은 그만큼 각별한 최고 권력의 상징이었음에 틀림없다. 오죽하면 그냥 대통령이 아니고 '제왕적 대통령'으로까지 불렸을까. 국민에 의해 선출된 권력임에도 선출의 주체인 국민 위에서 군림한 대통령을 비꼰 말일 테다.

지난 10일 또 한 명의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났다. 임기가 다 되어서도, 쿠데타에 의해서도 아닌, 이정미 재판장(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선고에 의해서다.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그의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은 종료됐다. 대통령은 자신이 가진 권력을 다 내려놓고 청와대를 떠났고, 그 모습을 국민들이 TV 생중계로 지켜보았다.

대통령을 무소불위의 최고 권력인 줄로만 알았던 많은 사람은 그 광경이 낯설었을 것이다. 헌법에 기초한 대통령 파면은 불법도, 탈법도 아닌 명백한 합법이었고, 아무도 그 '권능'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그 절대 권력을 대행한 재판장은 "헌법이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의 존립 근거이고, 국민은 그러한 헌법을 만들어 내는 힘의 원천"이라고 설파했다.

그랬다. 헌법은 처음부터 대통령 위에 있었고 국민 그 자체였다. 그것은 대한민국 역사가 시작된 순간부터 제1조(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로 존립했다. 다만, 존재를 실감하지 못했을 뿐이다. 법치를 유린하고 훼손한, 크고 작은 권력들 때문이었다.

이제는 다르다. 대한민국 헌법은 '3·10 법치혁명'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제11조(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가 확실히 입증됐고, 그 누구도 감히 그 권능에 도전할 수 없음을 국민이 확인했다.

헌법은 모든 권력에, 특히 새로운 권력에 대해 더 엄격할 것이다. 60일 안에 선출될 새 대통령은 헌정 사상 가장 엄혹한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국민은 자신의 권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확실히 학습했다. 그럼에도 새 대통령이 되려는 정치인은 줄을 섰다. 어느 때보다 더 엄정한 자기 관리가 요구됨에도 오히려 더 많은 후보들이 출사표를 던진 것은 분명히 아이러니다. 게다가 하나같이 적임자임을 내세우며, 더 달콤한 공약으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국민은 더 이상 호락호락하지 않다.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헌법 31조)를 주문할 것이고, 국가가 사회·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 증진과 적정 임금의 보장에 노력(32조)하라고 외칠 것이다. 또 국가가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34조)하는지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것이다.

"돈도 실력"이라고 외치는 망나니가, 그 말이 틀리지 않다고 자조하는 댓글이, "가만히 있으라"는 허무맹랑한 거짓말이 더 이상 국민의 가슴을 후벼 파는 일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국회의원 피선거권이 있고 선거일 현재 40세 이상(67조)이라면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 있을지라도, 임기를 다 채울 수 있느냐는 이제 다른 문제가 됐다. 마음속 깊이 국민을 두려워하는 '5년 단임의 정규직 공무원'만이 파면을 면해 축복받는 퇴임식을 치를 것이다. 그것은 더 이상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고, 우리는 그렇게 오늘을 만들고 있다. cho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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