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G2 미국·중국, 한국에 행패 가까운 무역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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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서울본부장

헌법재판소가 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인용함에 따라 대통령 파면이 결정됐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인 일이다. 대통령 탄핵 심판은 끝났지만 4개월여 동안 대한민국이 받은 상처는 깊고 심각하다. 최순실 사태가 언론에 처음 알려진 것은 지난해 10월 24일이었다. 촛불시위가 봇물처럼 터져 12월 9일 국회가 대통령 탄핵안을 의결했다. 이후 정국은 탄핵 찬반 싸움으로 혼란에 빠졌다. 그 기간 정책을 추진할 동력이 떨어진 우리 경제는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5월 대선 전까지 뚜렷한 정책적 노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 기업 등 경제 주체들은 중요한 정책적 결정을 새 대통령 등장 이후로 미룰 가능성이 높다.

우선 차기 정부 출범을 앞두고 선장 없는 정부가 과연 경기 부양을 위해 가용한 자원을 총동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미 정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경제정책 방향은 전문가들로부터 조기 대선을 의식한 6개월짜리 '맹탕 정책'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1분기 지표가 악화해 추경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불필요한 정치적 오해로 추경 추진 동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많다.

대통령 파면으로 한국경제 혼미
주요 정책 결정 새 대통령 이후로

중국에 왼뺨 미국엔 오른뺨 맞고
무역보복 얼마나 지속될지 몰라

국회·전문가 컨트롤타워 구성을


실물경기 반전을 위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주춤한 상황에서 검찰 조사로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대기업은 물론 중견기업들의 투자도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정치 불안과 글로벌 경기 침체, AI와 같은 일시적 현상들, 김영란법 등 여러 가지 부작용적 요인이 중첩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국내 경제 상황과 겹쳐 대외 불확실성이 큰 변수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G2이자 한국의 양대 수출상대국인 중국과 미국으로부터 각각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를 빌미로 한 무역보복'과 '보호주의를 앞세운 통상압력'을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우리나라 수출의 대중국 비중은 25.1%, 대미국 비중은 13.4%였다. G2국가에 의존하는 수출만 38.5%에 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G2에 대한 수출이 위협을 받으면서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경제 전체에 파급이 우려되고 있다.

한반도 사드 배치가 본격 전개되면서 한국 기업에 대한 중국의 보복은 강력하고 무자비하게 전개되고 있다. 사드 부지를 제공한 롯데그룹은 중국 당국이 사소한 소방 시설 기준 위반을 이유로 롯데마트에 대한 영업중단 처분을 남발하더니 결국 지난 8일 기준으로 문을 닫은 롯데마트 수(55개)가 전체 중국 롯데마트(99개)의 절반을 넘어섰다. 중국시장 최대의 진출 장벽이었던 비관세장벽도 강화되고 있다. 당장 많은 수출상품이 통관 등에서 불이익을 받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중국의 경제 보복은 일종의 경고 수준이었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경제적 압박을 가할 기세마저 보인다.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 조치가 지속되면 최악의 경우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0.5%포인트 떨어질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도 자국 이익만 앞세운 일방적인 통상정책을 노골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사드 배치로 중국이 경제보복 수위를 단계적으로 높여 가는 상황에서 설상가상의 형국이다. 미국의 요구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이 높은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공장을 지어 일자리를 만들라는 것이다. 또 대미 무역수지 흑자를 많이 내는 한국은 미국 상품을 더 많이 사 가라는 것이다.

지금처럼 우리나라가 리더십 부재인 상태에서 합리적인 논거로 중국과 미국 정부를 설득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사실 국제관계는 철저히 '힘의 논리'가 관철되는 무대다. 상대 국가보다 강해야 '공존'할 수 있고 약하면 생존이 위태롭다.

시한부이긴 하지만 당장 국회를 중심으로 각계 전문가들로 이뤄진 '컨트롤타워'를 구성해 반격할 수 있는 모든 카드를 준비해야 한다. 국제 무역전쟁에서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어부지리를 얻는 경제 외교 전략을 강구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중국은 우리한테 부품소재를 사지 않으면 독일, 일본에서 비싼 값에 구해야 한다. 중국 농산물도 우리가 아니면 사 줄 곳이 없다. 미국에 대해서도 통상 압력에 질질 끌려다니기보다 일본 등과의 역학관계까지 시야에 넣어 두고 미국 변수를 최소화하는 쪽으로 우리의 길을 열어 가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기업들도 당장은 쉽지 않겠지만 중국과 미국의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지역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해야 하고 대체 불가능한 기술과 제품으로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 ljn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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