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최루탄 그리고 광장의 기억
/정대현 사진부장
어수선한 시국 때문일까. 편집국 한편에 우두커니 놓인 사진부 캐비닛 속 먼지 쌓인 방독면과 헬멧이 눈에 들어온다. 1990년대 초까지 시위 현장 취재를 나갈 때면 카메라와 함께 가장 먼저 챙겼던 필수 장비였다.
방독면은 매캐한 최루탄과 다연발탄 가스의 참을 수 없는 고통에서 잠시나마 숨을 쉴 수 있게 해 주는 피난구였다. 헬멧은 '꽃병'이라는 별칭으로 부드럽게(?) 불리던 화염병과 시위대의 돌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다. 모두 거추장스럽고 운신하는 데 불편했지만, 더없이 요긴했다. 당시 '광장' 외에서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사람들과 그마저도 허용할 수 없었던 세력들이 맞붙는 서면이나 남포동은 격전지가 되기 일쑤였다. 그 후로도 한참 동안 도심지 거리와 광장에선 크고 작은 격전이 이어졌다. 모두의 아픔을 담아냈던 이 격전에서 최루탄과 화염병은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한 뒤에야 조금씩 사라져갔다.
유물된 화염병 최루탄
폭력적 수단 시대착오적
탄핵심판 과정과 결과는
미래 대통령에 대한 메시지
혈기 넘쳤던 청년 시절, 귓가를 때렸던 격전의 거친 구호와 숨소리는 이후 빠르게 지나가는 구급차의 사이렌처럼 저만큼 아득해졌다. 그런데 지난해 가을부터 서면 그곳에 다시 쩌렁쩌렁한 구호와 인파가 돌아왔다.
서면 중앙로 8차로를 꽉 채운 모습은 방독면이 필요했던 그때를 떠올리게 하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당시 격전의 상징물이었던 화염병과 최루탄은 등장하지 않았다. 자기 생각과 주장을 앉아서 실시간으로 어디든지 전할 수 있는 세상인데도, 사람들은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꾸역꾸역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자신의 미미한 목소리가 '민의'라는 큰 덩어리가 되어 가는 역사적인 '발생의 순간'을 체감하고 연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만큼 구호는 뜨거웠지만, 눈빛은 차가웠다. 행동은 거침없었지만, 절제를 담았다.
탄핵정국이 길어지자 붉은 탄핵카드와 촛불 대열 건너편으로 탄핵을 반대하며 태극기를 든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등장했다. 태극기와 함께 들고나온 성조기에서 한국전쟁 후 미국이 보내준 구호물자에 성조기와 함께 '미국 국민이 기증한 밀가루' 라는 글이 씌어 있던 것이 떠올랐다. 그들에게 전쟁의 기억과 상처는 과거가 아니라 여전히 현재인 듯했다. 그래선지 외침은 절박하고도 격렬해 보였다. 짧고 사소한 마찰이 있었지만, 강력한 스파크를 일으키기엔 두 집단 간 온도 차는 큰 듯했다. 이 모두가 우리가 사랑하는 민주주의의 한 풍경으로 보였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헌재의 결정을 수용하지 못할 진영의 대응에 우려가 커지고 있다. 어떤 결정이든 국론은 분열될 것이라고 걱정한다.
그러나 폭력과 분열의 가능성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자발적 질서와 변화의 희망으로 한껏 달아오른 광장의 열기를 호흡했던 2017년의 시민들에게 폭력적 수단은 이미 시대착오적이고 낡은 것이 됐다. 어느 정도 홍역이 예상되기도 하지만, '소낙비와 천둥 번개도 사흘을 넘기지 못한다'는 도덕경 구절처럼,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근대 이후 격랑의 역사 속 틈바구니에서 온몸에 공포와 상처를 안은 채 대한민국을 지켜왔다고 여기는 세대와 대한민국의 민주적 정치 권리를 단 한 번도 거저 얻지 않고 싸워 쟁취했다고 자부하는 또 다른 세대. 그들의 상처와 열망이 부딪치는 모습을 국론분열이라는 말로 호도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사이를 벌려 이득을 취하려는 협잡의 정치꾼이 국론분열의 주범이다.
탄핵심판 결정 후에도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계속될 것이다. 심판의 과정과 결과는 현재의 판단이기도 하지만, 미래의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광장에 나섰던 시민들은 국민으로서의 의무와 권리로 누벼진 '광장의 기억'을 새로운 유전 형질로 몸에 새겼을지도 모른다. 캐비닛에 넣어 둬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분명히 알았지 싶다. jhyu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