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도시 부산, 일상에 녹아 있는 불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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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하-모래 아이스크림'에서 전시 중인 '불안, 불-안 Ⅱ'.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해수욕장 백사장에서 어린 여자아이가 한가로이 모래 놀이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아이 너머로 보이는 돔(Dome)형 건물이 뭘까 눈을 크게 뜨고 봤더니…. 맙소사! 고리 원자력발전소였다.

고은사진미술관(부산 해운대구 우동)이 오는 5월 10일까지 개최하는 '정주하-모래 아이스크림' 전에선 '원전도시 부산'의 일상 속에 녹아 있는 잠재된 불안을 다양한 형식과 포맷으로 담아낸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정주하 작가는 이 미술관의 10년 장기 프로젝트인 '부산 참견錄'의 2017년도(5년 차) 작가로 선정돼 1년간 벌인 작업의 결과물을 이번 전시를 통해 선보이고 있다.

정주하 '모래 아이스크림' 전

원전과 즐거운 일상이 섞인
'허망한 아이러니' 보여 줘
카메라 흔들며 찍은 '소금춤'
휜 고층건물로 불안감 표현


전시는 고리 원전 주변의 즐거운 일상과 아이러니가 만들어낼 징후, 해운대의 이중성과 고리와 해운대 사이 기장의 어색한 풍경을 보여주는 네 가지 형식으로 구성된다.

'불안, 불-안 Ⅱ'는 기장군 임랑 해수욕장과 원전 주변의 해안가 풍경을 밝은 톤으로 담아낸다. 원전 앞바다에서 한가롭게 낚시를 하거나, 원전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해맑은 표정의 사람들의 모습에서 '허망한 아이러니'를 느낄 수 있다.

'정주하-모래 아이스크림'에서 전시 중인 '불안, 불-안 Ⅱ'. 고은사진미술관 제공
'소금춤'은 카메라를 흔들어 찍는 새로운 방법을 사용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해운대 마린시티의 고층 건물 등을 휘어진 모습으로 표현해 불안의 징조를 시각화했다. '부(富)의 상징'인 마린시티 마천루도 결코 원전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표현했다.

'바람 아래 물'도 독특한 기법을 사용한 작품들로 구성됐다. 정지 상태에서 카메라 셔터를 수 분간 눌러 사람이 실루엣만 남기고 사라져버린 듯한 장면이 만들어졌다.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것 같다는 오싹한 느낌을 들게 한다.

마지막으로 '기이한 장(場)'은 기장시장을 중심으로 기장 읍내 사람들과 풍경을 통해 일상에 녹아 있는 원전에서 비롯된 불안감을 렌즈에 담았다.

전시 타이틀인 '모래 아이스크림'은 부산의 이중성을 표현한다고 한다. 한국 최고의 관광지로 화려함을 뽐내는 해운대와 그 인근에 원전이 있는 기장이 서로 어울리지 않은 단어의 조합인 '모래 아이스크림' 같다는 작가의 시선을 담은 것이다.

정 작가는 1980년대 독일 유학 시절 이후 고집스레 핵(核)과 원전에 천착해 작업을 이어왔다. 고리를 비롯해 전국의 주요 원전을 찾아 핵에너지의 효율성과 위험성, 눈에 보이지 않는 미묘한 불안과 막연한 징조를 표현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도 그는 드러난 현상 이면의 현실을 돌아보게 하고, 그 속에 숨은 불안의 징조가 얼마나 우리 가까이에 있는지를 상상하게 만든다. ▶'정주하-모래 아이스크림'=5월 10일까지 고은사진미술관. 051-746-0055.

박진홍 선임기자 jhp@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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