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일, 다시 생각하면 '착한 척한' 일?
냉정한 이타주의자/윌리엄 맥어스킬
아프리카 오지 사막에선 최고급 냉장고가 쓸모없다. 전기가 없어 써먹을 수 없는 고철 덩어리에 불과하다. 사막의 더위를 견디는 데 더 절실한 건 물 한 모금이다.
'사막의 냉장고' 같은 원조 사례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남아프리카의 한 남성이 고안한 '플레이 펌프(Play Pump)'는 아프리카의 식수 공급 문제를 해결해 줄 혁신적인 기술로 주목을 받았다. 아이들이 놀이 삼아 회전기구를 타면 펌프를 작동시켜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장치. '마법의 뺑뺑이'란 별칭까지 붙은 이 펌프를 보급하는 캠페인에 독지가들이 몰려들었고, 아프리카 전역에 수천 대가 설치됐다. 하지만 몇 년 만에 이 캠페인은 대표적인 원조 실패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빈곤 퇴치 운동 일환 '공정무역'
고된 노동환경 공분 살 만하지만
공장 닫으면 더 열악한 환경 '노출'
불매 운동 아닌 구조적 문제 해결을
"선한 일도 경제적 효과 따지고
따뜻한 가슴에 차가운 머리를"
아이들은 회전기구 놀이에 금세 흥미를 잃었고, 결국 여성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뺑뺑이를 돌려야 했다. 고장이 나면 제대로 수리가 안 돼 쓰레기처럼 방치됐다. 대다수 마을에서는 구식 '수동펌프'가 사용하기 더 좋다는 소감을 내놨다. 실제로 시간당 1300ℓ를 길어 올리는 수동펌프에 비해 플레이 펌프로 얻는 물은 5분의 1에 불과했다.
영국의 30대 철학자 윌리엄 맥어스킬은 <냉정한 이타주의자>에서 좋은 의도가 나쁜 결과를 초래한 '경솔한 이타주의'의 여러 사례를 소개한다. 저자는 이타적 행위에 과학적인 데이터와 이성을 더할 때 비로소 선한 의도가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말한다. 플레이 펌프에는 '따뜻한 가슴'만 있었을 뿐 사전 수요 조사와 효과 분석 등 '차가운 머리'가 빠져 있었다.
저자는 한정된 자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이끌어 낸다는 의미로 '효율적 이타주의'를 제안한다. 남을 돕더라도 어떤 방식이 가장 좋은지 과학적으로 따져 보고 실효성이 높은 일부터 우선 실천하자는 것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보자면 재해 구호보다는 빈곤 구제 활동에 기부하는 게 더 합리적이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 구호단체의 기부금은 사망자 1명당 33만 달러에 달했지만, 전 세계적으로 빈곤 사망자에게 투입되는 지원금은 1만 5000달러로 2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연유로 긴급 재난구조 활동이 오랜 기간 검증된 보건 사업보다 투입 대비 효과가 떨어진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더욱이 빈곤 퇴치 운동의 하나인 '공정무역'과 '윤리적 소비'는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킨다. 가난한 나라에선 노동착취 공장이 오히려 좋은 일자리이기 때문이다. 공장이 문을 닫으면 노동자들은 더 형편없는 일자리로 내몰리거나 실직을 하게 된다. 가혹한 노동환경은 공분을 살 만하지만 이들 공장 제품을 불매할 게 아니라, 절대 빈곤의 구조적인 문제 해결에 힘을 보태는 게 올바른 대응이다.
선한 일을 선택할 때 득과 실을 따지는 건, 직업·진로의 영역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적성과 상관없이 너도나도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건 비효율적이다. 자신의 전문성을 살려 직업을 선택하고, 대신 돈을 많이 벌어서 기부금으로 남을 돕는 '기부를 위한 돈벌이'가 더 나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착한 일'에도 경제적 잣대를 들이미는 게 낯설어 보이지만, 세상을 더 빨리 효과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시도란 점에서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특히 표면적인 손익 분석뿐만 아니라 미래의 '기대가치' 개념을 더하면서 적용 영역을 한층 확장한다. '나의 한 표'가 선거 결과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해 보이지만 기대가치의 관점에서 보면 중요도는 훨씬 커진다. 더 나은 후보, 더 나은 정당이 집권했을 때의 '총 혜택'을 고려하면 꼭 필요한 투자인 셈이다. 저자는 노예제 폐지, 양성평등, 인종차별 철폐 같은 세계사에서 굵직한 정치적 변화를 이끌어 낸 운동가들의 활동 역시 가능성이 커 보였기 때문이 아니라, 목표를 이뤘을 때 보상(기대가치)이 컸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멀리서 찾을 필요 없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군부독재에 맞선 민주화운동도 같은 사례다. 최근 촛불 광장을 통해서도 경험했듯, 작은 촛불이 모이면 변화의 횃불이 된다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옥스퍼드대 철학과 교수인 저자는 자선단체의 효율성을 평가하는 '기빙왓위캔(Giving What We Can)', 진로 코칭과 직업 연구를 하는 '8만 시간(80000 Hours)' 등의 비영리단체를 설립해 상아탑 밖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책의 마지막 문장 속에 그의 생각과 활동의 모든 이유가 담겨 있다. 윌리엄 맥어스킬 지음/전미영 옮김/부키/312쪽/1만 6000원.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