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기업 100년 프로젝트] 5. ㈜동신유압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새 공장 시동 걸며 '세계 시장 도약' 다짐

동신유압 김지 회장이 창원시 진해구 남문동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 내 새 공장에서 동신유압의 미래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강원태 기자 wkang@

창업 50주년에 맞은 사출성형기 제작업체인 ㈜동신유압은 새 공장의 시동을 걸었다. 지난달 24일 창원시 진해구 남문동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 내 웅동배후1단지에서 새 공장 준공식이 열렸다. 공장 부지만 4만 4000㎡ 규모다. 공장동, 사무동은 물론 전시장까지 갖췄다.

불황 속에서 찾아보기 힘든 과감한 투자다. 기술 선진국과 중국의 추격 사이에 끼여 국내 제조업체들이 움츠러드는 시기다. 하지만 동신유압은 연명을 위한 '기업 다이어트'보다 '생존을 위한 도약'을 선택했다.

사출기 제작 한 우물 50년
불황 속에서 과감한 투자
4만여㎥ 규모 새공장 준공
헬스장 등 추가해 복지 향상
"일본·독일 따라잡겠다" 각오


동신유압 김지(73) 회장은 "세계 시장으로 뻗어가려면 새 공장이 필요했다. 세계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성장이 어렵고, 장래도 어두워진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기업가다. 10대 시절부터 기계제작소 등에서 일하며 야간학교에 다녔다. 대학에 진학했지만,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접었다. 돈을 벌어야 했다.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의 방직기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 때 어느 날 사장이 사업을 접겠다고 했다. 김 회장이 나서서 사업체를 이어받았다. 1967년의 일이다. 그렇게 동신유압이 태어났다.

김 회장은 "작은 회사였다. 직원은 모두 6명이었다"며 "당시 사장은 기계에 흥미를 못 느꼈지만 나는 기계 체질이었다"고 20대 중반의 어느 날을 회상했다.

초창기엔 선박기계 장비 수리를 주업으로 했다. 그러다 곧 지인의 권유로 사출기 국산화를 시도해 1969년 성공한다. 사출기가 귀하던 시절이다 보니, 사업은 나날이 성장세를 걸었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꾸준히 새로운 사출기를 만들어 내놓았고, 국내는 물론 국외 시장에서도 러브콜이 들어왔다. 1993년 동신유압은 무역의 날 1000만 불 수출의 탑을 받았다. 그 작던 회사는 이제 직원 140여 명, 연 매출 500억 원을 오가는 규모가 되었다.

위기도 있었다. 사출기 제작은 기름과 플라스틱이 연동되기 때문에 1, 2차 오일쇼크의 여파를 견뎌야 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사내 노사 갈등이었다. 80년대 말부터 20년 가까이 노사는 크게 대립을 했는데, 직장폐쇄 경험이 있을 정도였다.

김 회장은 "그때 사업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다면 사세가 훨씬 커졌을 것이다"며 "지금은 노사 관계가 매우 좋다. 구성원들이 각자 일에 최선을 다하는 안정적인 사내 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새 공장의 준공은 동신유압 스스로 던지는 '다짐'의 의미가 크다. 새 시설에 대한 막대한 투자는 50년간 한 우물을 팠듯, 기업의 총력을 사출성형기 제작에 투입하겠다는 선언이다. 김 회장은 "곳곳에 플라스틱이 쓰인다. 사출기의 세계 시장은 여전히 넓고, 도전할 곳이 많다"고 말했다.

새 공장으로 작업 환경이 쾌적해졌고, 북카페·헬스장 등 직원 복지를 위한 공간도 추가됐다. 더욱 일할 맛 나는 직장이 된 것이다. 이게 모두 '기술력 향상'을 위한 것이다. 최고의 환경에서 작업 효율성이 극대화되고 결국 제품의 질이 올라갈 수 있다는 게 김 회장의 설명이다.

또 부산신항 배후단지를 선택한 건 처음부터 '수출'을 염두에 둔 것이다. 물류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세계시장에서 일본과 독일 사출기를 따라잡겠다"며 "수출에 집중해 동신유압의 또 다른 전성기를 만들 것이다"고 노익장을 과시했다.

김수진·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