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디토리움의 음반가게] 225. 영화 '맛을 보여 드립니다'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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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향신료에 중독되듯, 절로 빠져드는 '브라질 음악'

영화 '맛을 보여 드립니다'의 사운드트랙. 김정범 제공

유학 시절, 영화 음악 수업에서 교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좋은 영화 음악은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을 나설 때, 그 음악이 기억나지 않아야 한다고 말이죠. 아마 영화를 뒤에서 철저하게 보조해 주는 영화 음악의 기능을 강조하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가끔 이런 영화가 있지 않나요? 영화 속 이야기조차 기억나지 않고, 오직 음악만 기억나는 영화요. 또 OST가 너무 멋짐에도 이상하리만큼 그 영화는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안 드는 그런 영화 말이지요.

영화 'Woman on Top', 국내에서는 '맛을 보여 드립니다'로 소개된 영화가 있습니다. 2000년에 만들어진 미국 로맨틱 코미디인데요, 당시 국내에서 인기 있었던 페넬로페 크루즈가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됐습니다. 이 영화의 OST 앨범은 제가 지금까지 가장 사랑하는 음반 중 하나입니다. 음악을 우연히 접하고는 이 음악을 듣기 위해 영화를 몇 번이나 보았지요. 그런데 지금도 영화 속 이야기라든지 장면들은 전혀 생각나지 않아요. 참 신기하지요. 솔직히 얘기하면, 그만큼 이 영화는 저에게 정말 별로였습니다. 하지만 이 음반은 누군가 저에게 브라질 음악에 빠져든 계기가 된 음반을 하나만 골라 달라던가, 브라질 음악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음반이 어떤 건지 질문을 할 때 주저 없이 가장 먼저 추천하는 음반입니다.

이 영화의 OST는 브라질 음악가들의 아름다운 음악들로 채워져 있는데요, 그 중심을 이루는 것은 파울리뉴 모스카(Paulinho Moska)의 음악입니다. 'A Flore o Espinho' 'Falsa Baiana' 'No Bracos De Isabel' 'Sonho Meu' 등 기타와 노래가 중심이 되어 펼쳐지는 그의 목소리와 멜로디는 정말 기가 막힙니다. 그 외에도 도리 케이미와 베이든 파웰 등 유명 음악가의 노래도 수록되어 있어요.

이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군악대에서 복무 중이었습니다. 휴가 중 우연히 알게 된 이 음악은 지금까지 제가 알던 보사노바 음악과 무척 달랐습니다. 마치 무척 강한 이국적인 향신료를 처음 맛보는 경험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제가 보사노바를 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저는 보사노바가 향기가 묻어나는 미국이나 유럽의 팝이나 가요만 알고 있을 뿐, 제가 가진 보사노바 음악도 대부분이 그렇더군요. '브라질의 대중음악은 정말 들어본 경험이 없구나' 하고 그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브라질 음악에 호기심을 느끼고 더 강하게 빠져들게 되었지요.

휴가를 마치고 군에 복귀해 같이 밴드를 하는 친구들에게 제가 하나하나 들어보라며 권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사실 이것이 밴드 '푸딩'의 첫 번째 앨범의 시작이었습니다. 음악은 만든 이의 경험과 이야기가 진솔하게 담겨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정말 강했던 시기에, 이런 이야기를 정말 멋진 브라질 음악 속에 담고 싶다는 생각을 이 음반이 시작하게 해 주었지요. pudditorium.com


김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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