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건축 이야기] 13. PDM파트너스 고성호 '프리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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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품고 이웃과 공생하는 막힌 듯 열린 공간

카페 겸 사옥 '프리젠트'는 공간 의미의 다양성과 수용자의 체험을 중요시한다. 건축은 타자와의 관계, 관계적 사이에서 스스로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사진은 외부 전경 및 내부 모습. 건축 사진작가 조명환 제공

공명이 되지 않는 음악이 있는가 하면, 작은 모티브의 선율에도 어떤 울림이 오는 음악이 있다. 그런데 함께 들었던 음악들은 아무리 이어폰을 끼고 들어도 공감력이 특히 진하다.

PDM 파트너스 고성호 건축가가 설계한 대부분의 건축물은 건축가가 연주하는 선율이 어떤 공감을 자아낸다. 그 비법은 건축주든, 고객이든, 인근 주민들이든, 누구와 함께하는 건축적 선율을 풀어낸다는 데 있다. 인테리어 전공을 하면서 그가 오랫동안 다진 생생한 생활건축과 건축과의 승화된 접목들은 그가 설계한 건축물들에서 편안함과 공명을 불러일으킨다.

황령산 자락에 카페 겸 사옥 용도
상업·업무동 브리지 통해 연결
쌈지마당 조성해 열린 공간 구축

바다·숲 조망 즐기는 공간감 살려
주변 관사·교회·빌라 등과도 조화
건축 요체는 '인간을 만드는 공간'

부산 수영구 남천동 황령산 자락의 가파른 경사지에 위치한 카페 겸 사옥 '프리젠트'도 마찬가지다.

이 건축물은 커피숍으로 사용할 상업공간동과 사무실과 개인 작업실로 사용할 업무동, 2개로 나누어 배치돼 있다. 이 두 개의 건물은 지하와 2층 브리지를 통해 연결되고 상호 교류된다. 대지는 좁고 긴 모양새를 가진다. 마감재를 벽돌로 함으로써 인근 부산시장 관사, 붉은 벽돌의 빌라와 제일교회와도 잘 어울린다. 벽돌은 고온다습한 한국적 지형에 잘 어울리는 마감재다.

사용자의 요구를 건축적 해법을 통해 해결하고, 이웃과의 관계를 배려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 이것이 프리젠트를 관통하는 가장 본질적인 개념이다.

사옥과 커피숍이 함께, 그러나 독립적으로 구성돼 사용자의 필요를 충족하는 건축, 인근 빌라의 조망을 최대한 가리지 않고 이웃과 공생하는 건축, 바다와 숲의 원경을 끌어들이고 새로운 근경을 구축함으로써 원경과 근경 모두를 즐길 수 있게 다양한 공간감을 주었다. 
취재 중에 불쑥 나타난, 졸린 듯한 야생 고양이 2마리도 원래의 풍경인 듯 한눈에 쏘옥 들어온다. 또 창으로 모습을 나타낸 천국으로 열려 있는 듯한 붉은 벽돌의 제일교회는 어느 유행가 가사같이 아련하다.

건축물을 두 개 동으로 분절시켜 공간을 열어놓음으로써 인근 빌라들의 조망권을 침해하지 않는 세심한 배려도 덧붙였다.

조망권 분쟁이 치열한 요즘, 건축가의 자그마한 생각 하나가 이렇게 이웃들의 시선을 편하게 만들 수도 있다. 두 건축물 사이에는 여러 개의 쌈지 마당을 조성해 공간별로 독립적인 마당을 가지거나 마당을 통해 교류하는 '열린 공간'을 갖게 했다.

고 건축가는 "땅은 저마다 그 고유의 장소성과 힘을 가진다. 그 땅의 성질을 이해하고 주변과의 관계를 고려해 장소의 특성을 시각화함으로써 어떤 새로운 관계를 구축할 것인가는 건축가의 깊은 고민 중 하나"라며 "새로운 건축물이 어떻게 앉혀지는가, 어떤 소재로 지어지는가, 어떤 역할을 하는 곳인가는 건축가와 건축주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들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말한다. '

건축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의 개념을 넘어서 그 속의 생활을 조직하는 것'이라고 늘 강조하는 그의 말에 수긍이 간다.

고 건축가는 "건축을 하면서 인간이 공간을 만드는 게 아니라, 공간이 인간을 만든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낀다"며 "외국인들은 한국에 아파트와 한옥이 함께 있는 것에 놀란다. 한옥 같은 훌륭한 자산이 있는데도 왜 존재감 없는 아파트를 짓느냐고 궁금해한다"고 덧붙인다.

그는 또 "최근 들어 아파트에서 벗어나려는 여러 가지 움직임들을 감지할 수 있다"며 "캐비닛 같은 아파트는 사람을 위한 게 아니라, 사업자를 위한 건축물이란 생각을 갖게 한다"고 덧붙인다.
외부 공간 역시 심플하면서 세련됐지만, 내부 공간성도 풍성하다. 열려 있지만 막혀 있고, 막혀 있지만 열려 있는 전통적 건축 기법을 적절히 활용해 주위 경치와 지형지세를 그대로 앉혔다. 이렇게 각각 공간은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게 배치되었다.

건축은 사회와의 상호 관련성에서 생각할 수 있다. 어찌 생각하면 건축가가 개인적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생산하는 것은 항상 주변과 사회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고 건축가의 설계작들을 관찰하면 건축가의 주관이란 건축주의 물음에 대한 응답, 그리고 사회적인 관습에 대한, 도전에 대한 승화된 반응이라는 말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박태성 문화전문기자 pt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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