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주의 세상 속으로] 부산발(發) 지방분권 개헌론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윤현주 논설위원

서병수 부산시장이 지난주 기자회견을 갖고 '지방분권형 헌법 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서 시장은 "지방자치가 시행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지방의 현실은 권한과 재원이 부족한 무늬만 지방자치"라며 지방자치단체에 입법·재정·조직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헌법을 보장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 시장의 이날 기자회견은 얼핏 보면 여러 요로에서 불고 있는 개헌론과 별반 차이가 없다. 하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뜯어보면 지방분권 개헌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낸 '작심 발언'이라 할 수 있다. 발언 수위와 내용이 예사롭지 않다. "그동안 재정권은 중앙이 지방을 컨트롤하는 수단이었다" "국회가 지방분권의 걸림돌이다" "대선이 끝나자마자 다음 대권을 놓고 권력투쟁을 하는 상황"…. 평소 비교적 온건주의자로 평가받는 서 시장의 발언치고는 상당히 날이 서 있다. 2년 6개월여 현장(시장)의 생생한 경험과 좌절이 반쪽짜리 지방자치에 대한 공분(公憤)으로 표출된 것이 아닐까.

서 시장 지방분권 개헌 강력 촉구
부산, 2000년대 분권운동 주도

국회 권력 수도권 의원 손에
특위에 지방 목소리 전달체계 필요

지방분권, 만병통치약 아니지만
지방 면역력 키우는 근본 처방전


서 시장이 쏘아 올린 지방분권형 개헌론은 향후 헌법 개정 과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당장 기자회견 다음 날 열린 제13회 '영호남 시·도지사 협력회의'에서 서 시장은 임기 1년의 의장으로 추대됐으며, 협의회는 즉각 지방분권 개헌 촉구 결의문을 채택했다.

여기에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전국 시·도의회의장협의회, 지방분권개헌국민운동본부, 한국지방신문협회 등 9개 단체가 '지방분권개헌국민회의'를 출범시키고 개헌안을 공동 발의했다. 부산발 지방분권형 개헌 목소리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모양새이다. 부산은 2000년대 지방분권 운동을 주도해 온 도시이다. 수도권의 대척점으로서 그만큼 지역 발전이 더뎠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방의 목소리가 헌법 개정에 제대로 반영될지는 미지수이다. 현재 개헌 주도권은 국회가 쥐고 있다. 또 하나의 개헌 발의권자인 대통령은 탄핵심판 중에 있다. 국회는 근 30년 만에 개헌특위를 구성, 가동 중이다. 개헌의 내용과 방법에서 여러 이견이 있지만 주로 권력구조와 임기 개편에 무게중심이 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무게중심의 한 축을 권력구조에서 지방분권으로 옮겨 놓아야 할 것이다.

개헌 논의를 개헌특위의 전유물로 내버려 둬선 안 된다는 뜻이다. 작금의 국회 권력은 수도권 국회의원들이 쥐고 있다. 수도권 의원들의 눈에 지방은 여전히 '촌'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개헌 논의에서도 지방분권을 홀대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서 시장을 위시한 전국의 지자체장들이 합심해 지방의 목소리를 개헌특위에 고스란히 전달할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지방분권개헌국민운동 등 시민단체와 전국 지자체장협의회, 개헌특위 등 3자가 연석회의를 구성해 지방의 목소리를 수렴하도록 시스템화해야 한다.

개헌 시기를 놓고 '제 논에 물 대기'식 논쟁이 일고 있지만 차기 대선 전 개헌은 사실상 어렵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물론 대통령 탄핵심판의 결과에 따라 그 시기는 유동성이 매우 커진다. 만일 탄핵이 인용된다면 대선 전 개헌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개헌 발의, 공고, 국회의결, 국민투표, 대통령 공포 등 5단계를 거치려면 최소 90일이 소요된다. 여기다 국회가 단일안을 도출하는 데까지 숱한 난제가 기다리고 있다. 탄핵이 기각된다면 시간은 충분하다.

대선 전 개헌이 어렵다면 구속력 있는 로드맵이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데 다수가 공감하고 있다. 즉 이번 대선 때 헌법 부칙안만이라도 개정해 개헌 절차와 시기 등을 못 박음으로써 차기 대통령 당선자가 이를 확실히 이행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동안 당선 후 마음을 바꾸는 대통령들을 숱하게 봐 온 '학습효과'의 결과이다.

지방분권형 개헌이 지방문제를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방분권은 병든 지방의 면역력을 키워 자력갱생할 수 있도록 하는 근본 처방전이다. 지방분권이 이뤄지지 않는 한 중앙정부의 백화만발식 지방 육성 정책은 대증요법에 불과하다 하겠다.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며, 권력구조는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매우 크다. 그러나 지방민의 입장에선 그보다 더 본질적이고 생존에 직결돼 있는 화두가 지방분권이다. 이제는 '촌놈'들이 들고 일어나야 할 때이다. hohoy@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