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EEZ 바닷모래 갈등-파내면 죽는다] 수산업계 "한일어업협정 결렬 이유도 모래 채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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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후 부산 서구 부산공동어시장에서 어업인과 시민단체 등이 남해안 EEZ 바닷모래 채취를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모습. 부산일보DB

한일어업협정 결렬의 이유로 그동안 정부는 우리가 일본 해역에서 더 많이 잡기 때문에 불리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주장해왔지만, 실제 이 구조는 남해 EEZ(배타적경제수역) 바닷모래 채취 이후 고착화된 것으로 드러났다.

바닷모래 채취가 단순한 어자원 감소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에 따른 파장이 한일어업협정 등 여러 방면에서 악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바닷모래 채취는 중단돼야 한다는 것이 어민들의 주장이다.

일본선망 한국해역 어획량
남해안 모래 채취 이후 급감
협상서 내밀 카드 사라진 셈

수산생물 회유 경로 바뀌고
제주도 고등어·전갱이 어장
일본 수역으로 이동하기도

■바닷모래 파내면서 일본도 어획 급감

12일 수협중앙회에 따르면 남해 EEZ에서의 바닷모래 채취가 시작되던 2008년, 일본선망업계가 한국 EEZ 내에서 어획한 양은 2만 5586t으로 당시 한국선망이 일본 EEZ 내에서 어획한 양보다 9배가량 많았다.

하지만 모래 채취 이후 어획량은 꾸준히 줄어 2011년 6797t, 2014년 832t, 협상 결렬이 된 지난해에는 131t(한국선망 어획량의 1.3% 수준)까지 줄어들었다.

협상이란 게 주고 받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일본 입장에서는 남해 EEZ 바닷모래 채취 이후 우리 해역에서의 조업량이 대폭 줄면서 굳이 우리 해역에 들어올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한마디로 모래 때문에, 한국이 받을 것만 있고, 내줄 게 없는 상황이 돼버린 것.

통상 한일어업협상을 통해 한국은 일본 EEZ 내에서 연승, 대형선망 등이 갈치, 고등어 등을 조업하는 이득을 얻고, 일본은 한국 EEZ 내에서 원양 선망이 조업을 하는 이득을 얻는다. 일본은 한국 EEZ 내에서도 주로 제주도 인근 해역에서 조업을 하며, 참다랑어와 고등어, 전갱이를 주로 잡는다.

그런데 각종 수산생물의 산란장이자 회유로, 어패류의 성장지인 욕지도 앞바다에서 바닷모래 채취가 이뤄지면서 수산생물들의 회유 경로 자체가 바뀌어버린 것이다.

■정부 전략없이 엉뚱한 카드로 협상

실제 남해 EEZ 바닷모래 채취 지역인 105해구에서의 선망 어획량만 살펴봐도, 고등어의 경우 2010년에 비해 2016년은 16% 수준으로 줄어들었고 전갱이도 5% 수준으로 급감했다. 대형선망수협이 최근 일본 선망업계로부터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과거 주로 제주도 인근에서 형성되던 겨울철 고등어, 전갱이 어장이 최근에는 일본 수역인 101, 102해구 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선망수협 관계자는 "모래 채취 이전까지만 해도 일본 선망에서 우리 구역에 들어와 조업하는 양이 우리보다 훨씬 많았는데 모래 채취 이후 상황이 역전됐다"면서 "물고기 입장에서 생각해도 모래를 파내는 해역은 물론, 주변만 가도 부유사 때문에 앞이 뿌옇고 먹이를 구할 수가 없는데 당연히 다른 경로로 돌아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수산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바닷모래 채취로 고기는 줄고, 한일어업협정까지 계속 결렬돼 이중고를 겪고 있는데 결국 한일어업협정 결렬 또한 바닷모래 채취 때문이었다니 더 억울하고 분통이 터진다"면서 "정부는 계속 일본 선망이 우리 해역에 들어올 것이라는 엉뚱한 기대로 협상에 임해왔는데, 그래서 결국 협상에 실패한 것 아니냐"며 정부의 전략부재를 비판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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