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태현 칼럼] 백척간두에서 '고도'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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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태현 논설실장

지금, 우리의 현실은 그 어느 때보다 엄혹하다. 탄핵정국의 정치적 불안정 속에서 민생과 경제, 외교안보, 청년실업 등 위태롭지 않은 분야가 없다. 국가와 국민이 백척간두에 처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은 진실되고 능력 있는 지도자가 분열된 국론을 수습하고 난맥상을 보이는 국정의 난제들을 풀어 주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우리 사회 깊숙이 자리 잡은 고질적 병부를 제거하고, '촛불 민심'에 담긴 국민의 바람을 받들고 섬길 줄 아는 자질을 갖춘 이가 바로 우리 시대의 새 지도자상이다. 그는 우리 사회를 좀먹는 패권주의와 도덕적 해이, 복지부동과 안전불감증, 소탐대실의 고질적 한국병을 낫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쌓이고 쌓인 적폐를 걷어 내고 새 시대를 열어갈 인물이어야 한다.

탄핵정국 국가 위기 엄혹한 현실
사회 좀먹는 고질적 한국병 만연
권력형 부패 도덕적 해이가 주적

AI·구제역 대란도 인간 탐욕 결과
대선주자들 패권주의 다를 바 없어
정책과 공약으로 국민 마음 얻어야

김영란법 시행을 불가피하게 만든 게 바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도덕적 불감증과 위법적 먹이사슬이란 점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권력자들과 그들에 연루된 재벌 기업들, 주변 패거리 인사들의 비리와 오만방자함은 도를 넘었다. 김영란법의 3·5·10 원칙에 연연하는 서민들의 새가슴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하다. 대통령 탄핵정국을 초래한 권부 주변 비선 실세와 그 무리들의 탐욕의 실상이 이를 잘 말해 준다. 국정까지 농단한 그들의 권력형 부패는 가장 먼저 청산돼야 할 우리 사회의 주적이다. 아직도 아픔이고 빚으로 남아 있는 세월호 사고는 오래되고 거대한 관료마피아 조직의 도덕적 타락의 결과다. 선체 개조 등 소탐대실의 안전불감증과 복지부동의 탁상행정이 낳은 복합 부패형 참사다. 골든타임을 놓친 무능과 무책임은 결코 지워지지 않을 낙인이다.

지난해 11월 발생한 조류인플루엔자(AI)로 지금까지 3000만 마리가 넘는 닭과 조류가 살처분되고 계란대란이 발생했다. 최근에는 구제역까지 덮쳐 동물과 인간을 위협하고 있다. 인간의 욕심과 무분별한 경제성 추구에서 비롯된 환경 악화와 도덕적 해이가 원인으로 지적된다. 닭 사육의 공장식 밀집화와 대형화 등 환경의 열악화, 사람과 차량에 의한 바이러스 전파 등 허술한 방역체계, 소·돼지 백신 접종 기피와 관리 실패 등이 화근이 됐다. 순리와 정도를 어긴 인간사회에 대한 자연의 경고로 해석된다.

우리 사회의 이런 환부를 도려내고 새살을 돋게 해야 할 대선주자들의 행보는 어떤가. 그 역시 고질적 한국병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세를 모으기 위해 어지러운 이합집산과 합종연횡의 틀짜기를 보이더니, 이제는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의 맞불싸움으로 헌재 흔들기를 부추기는 정치권이다. 모로 가도 자신에게 유리한 고지만 점령하면 된다는 방식이면 곤란하다. 패권적 행태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 대변혁을 향한 정책 승부가 아니라 정권 쟁취를 위한 패권주의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진보, 대연정, 보수단일화, 중도개혁 세력의 결집 등 현재 제시되고 있는 그 어떤 프레임도 결코 민심을 거역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얄팍한 눈속임과 달변의 화술로 국민의 눈과 귀를 잠깐 동안 현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이는 오래가지 못한다.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국민의 행복과 사회의 정의를 실현하려는 순수한 열정과 포부를 가진 자라야 백척간두에 선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오직 정책과 공약으로 승부하는 근성과 뚝심이야말로 차기 지도자의 자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진정성을 우리 국민은 살 것이라고 확신한다. 상대 당이나 후보를 헐뜯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철학과 정책을 펴는 주자의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지방분권형 개헌 청사진 등 국가 발전을 위한 바람직한 개헌 구상을 준비하고 있는지, 원전 대책 등 국민 안전을 담보할 클린에너지 정책의 비전을 세우고 있는지, 제4차 산업혁명의 융합형 산업 활성화를 통한 청년 일자리 창출과 2%대에 머물고 있는 경제성장률 제고 방안은 마련하고 있는지, 북핵 위협과 트럼프시대의 불확실성에 대비한 동아시아 외교안보 전략과 정책은 무엇인지, 소녀상 문제로 한 달간이나 지속되고 있는 일본과의 외교 갈등은 어떻게 타개해 나갈 것인지, 국민들이 알고 싶고 듣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다.

우리 사회의 적폐와 고질병을 해소하고, 새 역사를 써 나가는 일은 새 지도자의 소명이고 사명이다. 뚜렷한 비전과 정책, 심원한 전략으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을 '고도'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hy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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