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프레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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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11 테러 후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꺼내든 카드는 '테러와의 전쟁'이었다. 미국은 아프간에 이어 2003년 이라크를 공격했다. 테러와의 전쟁은 국민들에게 일상의 공포를 안겼다. 부시 행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프레임으로 전쟁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부시 대통령에게는 무한 권력을 줬다. 테러와의 전쟁 프레임은 모든 전쟁을 정의로운 행위로 인식하게 했다. 부시는 2004년 재선에 성공했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용어는 오바마 취임 후 폐기됐다.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사용한 미국 우선주의, 같은 맥락의 '대안 우파(alt-right)' 역시 선거 프레임으로 힘을 발휘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문고리 권력인 스티브 배넌은 대안 우파 플랫폼 브레이트바트 뉴스의 대표를 지냈다. 대안 우파는 인종주의·네오나치즘·백인우월주의의 다른 이름이지만, 그럴듯한 프레임으로 포장돼 대중들에게 다가간다. 대안 우파는 영국의 브렉시트 찬성, 독일을 위한 대안, 프랑스 국민전선 등 극우 정당을 통해 선거에서 기존 보수 세력을 대체하고 있다.

'프레임(frame)'을 언어학에 도입한 사람은 찰스 필모어였지만, 그의 동료인 조지 레이코프는 프레임의 영역을 확장했다. 놈 촘스키의 제자였던 레이코프는 언어학에서 스승과 길을 달리하고, 인지언어학을 만들어 촘스키와 다른 방식으로 사회 참여를 하고 있다. 레이코프에 따르면 프레임은 세상을 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인 구조물이다. 프레임은 특정 단어와 연상되는 사고 체계여서, 상대방의 프레임을 부정할수록 오히려 그 프레임은 강화된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말하는 순간 상대방은 코끼리를 생각하게 된다. 프레임은 유권자를 프레임 안에 가둔다. 레이코프는 선거를 프레임과 프레임의 전쟁이라고 했다.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면서 대선 후보들의 프레임 전쟁도 막이 올랐다. 선거 때마다 등장하던 빨갱이 프레임의 변종인 종북 프레임은 탄핵 국면을 맞아 영향력의 한계를 보이고 있다. 제3지대 빅텐트, 정치교체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중도 포기로 프레임의 기능을 상실했다. 남은 프레임들, 정권 교체, 대연정, 세대 교체, 보수 통합, 대세론, 패권주의…. 어떤 프레임이 '코끼리'가 될지, 유권자의 최종 선택도 머지않은 것 같다. 이춘우 편집위원 bom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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