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이민' 독특한 시각으로 본 인간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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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 <시간 망명자> 김주영(오른쪽) 작가와 출판사 '인디페이퍼' 최종인 대표가 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심각한 출산율 저하로 인류의 존속이 힘들진 시대. 인류 보존을 위해 과거의 인간을 데려오는 '시간 이민 정책'이 추진된다. 하지만 시간 이민자들의 옛 기억과 함께 당대 사회적 갈등까지 함께 옮겨오게 되고, 이 와중에 시간 이민자들이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연쇄살인 사건이 발생하면서 미래 사회는 대혼란에 빠져든다.

김주영(40) 작가가 오랜만에 내놓은 장편소설 <시간 망명자>(사진)는 우리 사회에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는 SF스릴러 장르물이다. 소설은 수백 년 뒤, 평화로운 인간 세상의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불평등' '인권침해' 등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하다. 네오 헤븐, 원주민, 시간 이민자 등으로 '계급'이 나뉘었고, 최상류층은 더욱 은밀하고 교묘한 방식으로 하층민을 핍박한다.

김주영 작가 SF 장편소설
'시간 망명자' 17년 만의 신작
부산 1인 출판사와 합심
영화까지 염두 꼼꼼한 기획
"부산은 SF에 딱 맞는 도시
"

김 작가는 "의식주가 해결되고 범죄도 통제할 수 있는 완벽한 이상향 사회에서도 권력을 잡은 세력은 부패한다"며 "불편한 사회를 전복시키는 '혁명 스피릿'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소설 속 주인공은 1920년대 일제강점기 경성에서 '밀정'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돕던 인물. '조국의 봄'보다 개인의 안위를 더 생각한다는 점에서 개혁 의지는 있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우리네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미래 사회에선 결정적인 역할을 해낸다. 타락한 미래 인류사회를 위협하는 '존재들'에게선 요즘의 '촛불 민심' 풍경도 겹쳐진다. 원고는 지난해 10월 마무리됐는데, 이후 정국을 우연히 예견한 셈이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이야기는 최근 드라마와 영화 등에서 자주 등장하는 익숙한 구조. 하지만, 몇몇 인물의 시간 '여행'이 아니라 대규모 시간 '이민'이란 점이 독특하다. 김 작가는 "난임과 인구감소 문제를 접하며 몇 년 전부터 '시간 이민' 소재를 구상해왔다"며 "동유럽을 여행하며 알게 된 2차 세계대전 피해자나 세월호 사건 희생자 등 억울하게 죽은 이들에게 '2차 인생'을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를 구체화했다"고 설명했다.

취미 삼아 중학생 때부터 SF소설을 쓰기 시작한 김 작가는 PC통신 시절 '하이텔 과학소설동호회'에서 활동하며 <그의 이름은 나호라 한다>를 펴내는 등 SF·환상문학계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긴 '조상님' 격이지만,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진 않았다. 시대를 앞선 탓도 있고, 부산에서 교사 생활을 하느라 스스로 노출을 꺼리기도 했다.

<그의 이름은 나호…> 이후 17년 만에 내놓은 SF장편 <시간 망명자>는 부산의 한 신진 출판사에서 출간돼 의미를 더한다. 서울의 한 출판사에서 편집장으로 일하며 김 작가와 인연을 맺은 인디페이퍼 최종인 대표는 1년여 전 부산으로 내려와 1인 출판사를 세우고 첫 작업을 김 작가와 함께했다.

SF소설 <시간 망명자>에서 중요한 상징물인 '피타고라스의 나무'.
최 대표는 "부산은 항구와 바다가 있는 영화의 도시인 데다, 골목길이 오래된 미로 같은 느낌이어서 미스터리·스릴러 장르와 잘 어울린다"며 "이들 장르를 중심으로, 부산지역 특화 콘텐츠를 담은 책도 꾸준히 발간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시간 망명자> 역시 영화 제작까지 염두에 두고 최 대표와 김 작가가 기획부터 꼼꼼하게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탄생한 작품. 영화 시나리오처럼 빠른 호흡과 전개, 크고 작은 반전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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