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준 칼럼] 갈등과 통합, 이번 대선이 기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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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준 논설위원

'나의 대통령이 아니다(Not My President).' 지난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트럼프 후보가 당선된 이후 그에 반발하는 시위에서 나온 구호다. 이후 미국 내 갈등의 골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열흘 만에 나온 반이민 행정명령으로 더욱 더 깊어지고 있다.

올해 대선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그와 같은 구호가 나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대한민국은 이미 갈기갈기 찢어져 있다. 보수-진보의 이념과 진영 대립에다 계층·세대 갈등까지 겹쳐졌다. 건강한 대화와 토론은 사라진 지 오래다. 아군과 적군으로 나누어 우리 편은 정의고 상대방은 불의라는 막무가내식 진영논리만 판을 치고 있다. 이 같은 양상은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더욱더 악화되고 있다.

깊어진 우리 사회 갈등과 분열
대선 이후 더 악화될 가능성 커

반기문 20일 만의 불출마 선언
'말뿐인 통합 안 된다' 보여 줘

지금 요구되는 시대정신은 통합
갈등 해소 모색하는 대선 돼야


문제는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 반목과 상처가 더욱 더 깊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선거라는 것이 본래 승자와 패자가 나뉘고 승자만이 살아남는 전쟁과 같은 것이다. 그중에서도 정권 그 자체가 걸린 대선은 후보 개인의 당락을 넘어 정파와 진영의 명운이 갈리기 때문에 더욱더 사생결단식이 된다. 특히 '탄핵 이후'에 치러져야 하는 이번 대선은 보수-진보의 이념 대결과 여야 정권 교체에 탄핵이 맞물려 있다. 탄핵 인용이든 기각이든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갈등 폭발의 기폭제가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대선이 어떤 구도로 펼쳐져도 대선 주자 중 누구도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뿐만 아니라 새 대통령은 지지자와 반대자 양쪽 세력의 중간에 끼여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이게 된다. 만약 지지자 중심의 정책을 밀어붙인다면 그들의 호응은 받겠지만 반대 세력의 저항은 더욱더 강경해질 것이다. 반대 세력에 유화적인 정책을 내놓고 통합의 행보에 나선다면 오히려 지지자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또 누가 당선돼도 국회에서는 여소야대다. 국회의원 과반은커녕 4분의 1 정도의 지지를 받는 대선주자도 없다. 만약 탄핵 인용 후 대선이 치러지면 정권 인수기간도 없이 곧바로 취임해야 하는 새 대통령은 일정 기간 전 정권 국무총리·장관과의 '동거'가 불가피하다. 국회의 협력을 이끌어 내지 못하면 대통령만 있고 내각은 없는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가 장기화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당선되든 대선 이후가 더 큰 문제다. 개혁과 적폐 청산, 민생과 경제, 안보와 외교 등 다음 정권이 해결해야 할 현안이 산적해 있지만 지금과 같은 갈등 구조가 해결되기는커녕 더 심화된다면 다음 대통령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식물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다.

아직 대선이 공식적으로 시작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너무 성급한 걱정이라 치부할 수도 있다. 대선 주자들은 당선 이후보다 눈앞의 당선에만 목을 매달 것이다. 정치교체, 정권교체, 세대교체 등 대선주자들마다 내세우는 구호는 다양하다. 그러나 다음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시대정신은 다름 아닌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고 화해과 통합에 나서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가 아니라면 통합과 화합, 협력의 정치가 가능해야 개혁이든 민생이든 뭐라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합을 이야기하는 대선주자도 없지 않다. 그러나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표를 위한, 입에 발린 통합이 아니다. 반대자를 끌어안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밝혀야 한다. 더 나아가 그를 위해 자신의 지지자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대통합'을 정치 참여의 제1 목표로 내세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불과 20일 만에 중도 낙마한 것은 콘텐츠 없는 말뿐인 통합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 줬다.

탄핵 찬성이든 반대든, 금수저건 흙수저건 모두가 대한민국 국민이다. 한 정권의 나라나 정치인만의 나라가 아닌 모든 국민이 함께 살아야 할 나라다. 반대하는 국민을 도외시하고 우리 편끼리만 가겠다는 대통령은 안 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갈등과 분열의 이유가 무엇이며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따지기보다 그 같은 갈등과 분열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해법을 모색하는 대선이 돼야 한다.

물론 대통령만 잘 뽑으면 우리 사회의 갈등이 단번에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해도 출발은 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이 심화될 것인지, 아니면 그 해결의 단초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인지 이번 대선이 기로다. joo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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