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불출마 선언 배경은 "정치권 음해·가짜 뉴스에 정치교체 명분 실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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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2일 귀국. 박희만 기자 phman@·일부 연합뉴스

'세계 대통령'으로도 불리는 유엔 사무총장직을 마치고 대한민국 대통령에 도전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끝내 현실정치의 벽을 넘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지난달 12일 귀국해 사실상 대선행보에 나선 지 20일 만으로, 과거 고건·정운찬 전 국무총리 등 고위관료 출신 인사들이 제3지대 후보로 거론됐다가 중도 포기한 전례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되풀이됐다.

박연차·조카 관련 의혹에
정치권 공세 이어지고
턱받이·퇴주잔 논란 구설

지지율 눈에 띄게 떨어져
빅텐트 구상에 큰 장애물
반 "너무 순수했던 것 같다"

반 전 총장은 1일 오전 불출마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런 결단의 배경에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각종 비난 여론에 대한 부담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문에서 "인격살해에 가까운 음해, 각종 가짜 뉴스로 인해서 정치교체 명분은 실종되면서 오히려 저 개인과 가족, 그리고 제가 10년을 봉직했던 유엔의 명예에 큰 상처만 남겼다"고 토로했다.

1월 12일 공항철도 승차권 발매 실수.
사실 반 전 총장은 귀국 전부터 검증 공세에 직면했다.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던 '박연차 23만 달러 수수 의혹'이 대표적이다. 동생과 조카의 사기 혐의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고 무관하다'며 부인했지만 이런 해명은 오히려 더 큰 의혹을 낳았다. '프로 정치인'이 아닌 반 전 총장으로서는 견디기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 '턱받이 봉사', '퇴주잔 논란' 등을 비롯해 크고 작은 실수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험악한 여론도 그를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았다. 일각에서는 야권이 각종 의혹에 대한 대대적인 추가 검증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는데 이 역시 반 전 총장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1월 14일 꽃동네 방문 `턱받이 논란`.
이런 가운데 반 전 총장의 지지율은 눈에 띄게 떨어졌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지지율 1위를 차지하기도 했지만, 귀국 3주일이 지나면서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10%대에 머물렀다.

지지율 답보는 자신이 주도하는 '빅텐트' 구상에도 커다란 장애물이 됐다. 야권 인사들은 물론 새누리당 의원들, 심지어 최근에는 고향인 충청권 의원들조차 합류를 망설이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선 전 개헌'을 마지막 카드로 제시하며 자신 주도의 '제3지대' 형성을 시도했지만, 기성 정치권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반 전 총장이 이날 불출마 선언 직전 가졌던 새누리당, 바른정당 지도부와의 면담에서도 이런 부분에 대한 화답보다는 "정체성을 분명히 하라"는 주문과 "빨리 입당하라"는 압박만 받았다.

그 직후 불출마 기자회견을 연 반 전 총장은 이후 참모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치인이면 진영을 분명히 하라고 요구하더라. 그러나 보수만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대통령의 자격이 없다"고 보수 정당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2월 1일 대선 불출마 선언.
일각에서는 반 전 총장이 중도포기라는 상황을 스스로 불러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탄핵정국 이후 급변한 국내 정치상황에 어두웠던데다 '촛불'로 대변되는 민심의 변화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채 '진보적 보수주의자', '촛불민심의 변질' 발언 등으로 오락가락 행보를 했다는 것이다.

거기다 무소속으로 버티기에는 캠프 구성, 지역별 조직, 선거자금 등 모든 측면에서 압박을 받았으리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마디로 대선 행보에 나서기에 준비가 미흡했다는 것이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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