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탐식법] 요구르트 한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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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큼의 음식을 먹어야 섭생을 충족시키고 만족감을 느낄까. 설날 오후, 우리는 엄마가 계신 요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시내 곳곳이 막히는 시간이었고 명절이 주는 피로감에 지친 우리는 모두 조용했다. 부산진역 앞을 지나다가 대로변 인도에 사람들이 길게 늘어선 광경을 보았다. 무료급식소에서 진행하는 설 특별 급식을 기다리는 줄이었는데 그 줄도 차들만큼이나 쉽게 줄지 않았다. 독거노인, 노숙인, 쪽방촌 사람들이 추운 날씨의 길에서 오래도록 기다렸다 먹는 그 음식의 양은 과연 얼마만큼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환자복을 입은 엄마는 가족이 둘러앉은 테이블에서 명절 음식을 급히 씹어 삼켰다. 엄마가 만든 명절 음식을 받아먹기만 하던 가족은 새삼 엄마의 먹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다. 튀김, 전, 과일, 식혜 등이 입에 들어가는 동안 엄마는 '꿀맛이다'라는 말만 반복하며 더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먹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음식이 다 떨어지면 먹는 재미를 잃어버린 엄마를 다시 요양원에 남기고 돌아서야 하는 나로서는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이라도 해결될 수 없을 두려움을 느꼈다.

병실 침대로 옮기고 양치질을 해주는 동안 엄마는 망상에서 비롯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이 망상 때문에 엄마는 한동안 하루 세 끼 식사와 총 여섯 번의 약 복용을 거부했다. 살이 급속도로 빠져 위태로웠는데 지금은 다행히 어르고 달래면 잘 먹어주는 모양이었다. 요양보호사는 그 요령을 가격 170원, 용량 65㎖의 작은 요구르트 한 병으로 설명했다. 떠먹는 요거트가 아닌, 새콤달콤해서 마시고 나면 더 마시고 싶어지는 요구르트.

살구색 옷을 입은 아주머니들이 배달하는 그 요구르트는 내 오랜 음료였다. 연년생의 동생 때문에 엄마의 품을 일찍 뺏긴 나는 하루 열두 병의 요구르트로 엄마 품의 허전함을 달래야 했다. 잘 걷지도 못하는 것이 스스로 빈 젖병을 들고 자는 엄마를 찾아가 머리를 콩콩 때리며 요구르트를 요구한 날도 있었다니 요구르트를 먹는 것만이 내가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이었던가 보다. 어른이 될 때까지 냉장고에 요구르트가 빠진 날은 거의 없었다. 수시로 냉장고 문을 열어가며 찾아 마시는 통에 엄마는 요구르트 배달 아줌마를 자주 불러 세웠다. 한입에 털어 마시거나, 앞니로 밑바닥 모서리를 뜯어 작은 구멍을 통해 나오는 한 방울을 아껴 마시거나, 빨대 하나로 다섯 개를 모아 마시거나, 요구르트는 늘 감질났다.

오후 다섯 시, 엄마는 사위가 내민 요구르트를 마시기 위해 약을 받아먹었다. 엄마는 요구르트로 나를 키웠고 서른일곱의 어른이 된 나는 이제 예순셋의 아이가 된 엄마를 살리려고 요구르트를 산다. 독거노인 고독사 방지를 위해 이 작은 요구르트 한 병을 배달해주는 복지사업이 있다고 한다. 커피 한 잔 값으로 누군가의 안위를 한 달 동안 살필 수 있는 것이다. 섭생에 필요한 음식의 양은 잘 모르겠지만 누군가를 돌보는 데 필요한 마음의 표시는 65㎖의 용량으로도 가능하다. 1980년대 장수마을을 배경으로 찍은 요구르트 광고에 나오던 '이 작은 한 병에 건강의 소중함을 담았습니다'라는 말이 새삼 마음에 와 닿는다. dreams0309@hanmail.net

이정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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