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혁신과 통합, 보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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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국 정치평론가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오래된 정치 격언이 있다. 그러나 2017년의 정치시계, 특히 보수 진영의 상황은 이 격언을 무색게 하고 있다. 진보는 뭘 해도 잘되는데 보수는 뭘 해도 잘 안되는 상황이 2년째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2017년 한국의 보수는 무능과 부패로 이미 망한데다가 분열까지 해서 말 그대로 회생 불능 상태다. 보수에게 약간 유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 때문에 나는 그동안 진보의 발전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렇게라도 해서 좌·우 두 날개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나라의 발전에 긴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최근 들어 똑같은 문제의식으로 보수의 회생에 관심을 두고 있다. 너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통에 지금의 보수는 정권 재창출은커녕 변변한 야당 노릇도 제대로 못하지 싶은 것이다.

무능·부패·분열로 무너진 보수
혁신하고 힘 모아야 회생 가능

대선 국면 후보 중심 연대 필요
'따로 또 같이' 빅텐트 만들어야

혁신·통합 함께 시너지 낼 때
보수에게 쇄신과 회생 길 열려

새누리당이건 바른정당이건, 이른바 비패권 제3지대건 스스로 보수라 생각하는 정치집단들은 두 가지 과제를 공통적으로 안고 있다. 하나는 혁신의 과제고 다른 하나는 통합의 과제다. 낡은 보수를 혁신해야 국민의 사랑과 지지를 다시 받을 수 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보수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보수가 다 함께 해야 힘을 쓸 수 있고 탄핵 정국의 수세적 국면에 대처할 수 있으며 문재인 대세론을 저지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보수라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혁신을 먼저 할 것인가 통합을 우선 할 것인가. 새누리당의 인명진비대위는 과연 새누리당을 제대로 혁신하고 있는가. 바른정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 동조하고 새누리당을 탈당한 것만으로 혁신했다 할 수 있는가. 제3지대의 정치인들은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혁신했다 할 수 있는가. 보수를 자처하는 정치집단들은 통합은 차치하고 혁신이나 제대로 하고 있는가 말이다.

새누리당은 혁신을 둘러싼 내홍을 격렬하게 겪은 유일한 정치집단이다. 이정현·정갑윤 탈당, 서청원·최경환 당원권 정지 3년, 윤상현 당원권 정지 1년. 혁신의 출발점일 수밖에 없는 인적 청산과 관련해 새누리당이 한 달여의 내홍 끝에 거둔 성과다. 미흡하다는 평가, 짜고 친 고스톱이라는 평가, 면죄부 쇄신이라는 평가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당을 전일적으로 지배해 온 친박 패권주의가 엄존한 정치 환경을 감안하면 맨손으로 들어가 필마단기로 싸운 인명진 비대위원장이 거둔 성과 치고는 평가할 만하다. 이 혁신의 성과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새누리당이 통합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기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도 바른정당도 비패권 제3지대도 목표는 같다. 다음 정권을 친박·친문 패권주의에 넘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친박은 후보도 내지 못하기 때문에 문제는 결국 친문 패권주의의 대표격인 문재인을 어떻게 포위 고립시킬 것인가로 모아지게 된다.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 고리가 바로 후보다. 대통령선거 국면은 정당들이 아니라 후보들이 주도하는 국면이므로 각 정치집단들이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후보들을 중심으로 연대틀을 구축하면 일이 쉬워진다는 뜻이다. 보수 혁신의 문제도 각 정치집단들이 내세운 후보의 면면이 혁신적 보수에 걸맞은 인물인지에 의해 판가름하면 간단히 해결된다. 당이 아무리 혁신하면 뭐하는가, 그 당이 내세운 후보가 낡고 노쇠한 인물이라면….

빅텐트는 야권의 전유물이 아니다. 정치적으로 세 불리하고 분열돼 있는 진영은 그것이 보수건 진보건 빅텐트를 고민하는 것이 마땅하다. 합당이나 연대와 달리 빅텐트는 각 정치집단들의 차별성을 존중하면서 함께할 수 있는 정치연합의 한 형태다. 동등한 자격으로 함께 참여함으로써 '따로 또 같이' 하는 연대의 미를 만들어 내는 방식이다. 빅텐트는 그동안 정치 선거 지형이 자신들에게 유리하지 않다고 느꼈던 진보 진영과 야권에서 선거 때마다 제기됐던 정치연합 방식이나 아직 한 번도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던 방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통합이 강점인 보수는 이걸 해낼 수 있을까. 혁신과 통합 두 과제를 시너지를 만들어 내는 방식으로 함께 추진할 수 있다면 보수에게도 실낱 같은 희망이 생기지 않을까.

2017년 새해 벽두에 생각해 보는 보수의 길은 이렇듯 바늘귀처럼 좁고 좁은 길이다. 그러나 바로 거기에서부터 쇄신과 회생의 길이 열린다는 점에서 보수가 승부를 걸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전술적으로 비관하되, 전략적으로 낙관하라는 선현의 말씀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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