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블랙리스트 '대통령 지시' 논란 명쾌히 규명돼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관리 혐의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구속됐다. 블랙리스트 '몸통'으로 지목돼 온 두 사람이 구속됨으로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영장 기각으로 주춤했던 특검팀의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수사는 다시 탄력을 받게 됐다.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은 영장실질심사에서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했으나 법원은 혐의의 상당 부분이 소명된 것으로 판단해 영장을 발부했다.
특검은 어제 두 사람을 다시 소환해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특검이 구속 중인 두 사람을 숨돌릴 틈도 주지 않고 소환 조사를 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직간접 지시나 관여 여부를 캐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검의 블랙리스트 수사의 칼날은 애당초 박 대통령을 향해 있었다. 이와 관련, 일부 언론은 박 대통령이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하도록 지시했다는 내용이 두 사람의 구속영장에 적시됐다고 보도했다. 블랙리스트의 출발점이 대통령이라는 게 특검의 판단이라는 것이다.
만일 이 같은 내용이 사실이라면 대통령 탄핵심판에 결정적 변수가 생긴 셈이다. 블랙리스트는 사상·표현·언론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을 위반한 중대한 범죄이기 때문이다. 대기업으로부터의 뇌물수수보다 죄질이 더 나쁘고 파장이 큰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부로 수사 기간(3개월)의 절반을 보낸 특검으로선 '결정타'를 날릴 기회를 잡았다고 여길 만하다.
하지만 박 대통령 측은 블랙리스트 작성을 직접 지시한 사실이 없다면서 관련 의혹을 보도한 언론사를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방침을 밝혔다. 이 사안이 얼마나 민감한지를 보여 주는 대목이다. 대통령의 반발이 아니라도 특검이 익명을 이용해 혐의 내용을 특정 언론사에만 흘리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특검법에 규정된 대로 모든 수사 상황은 특검보가 공개적으로 밝히는 게 정도이다. 대통령, 나아가 대한민국의 운명이 달려 있는 만큼 특검 수사와 발표는 법적 정당성을 획득해야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