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현주의 고전과 세태] 1.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일정한 생업이 없으면 예의를 모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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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가 침체의 늪에서 헤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국가 경제의 양대 축인 수출과 내수가 동반 부진에 빠졌고, 1300조 원에 달하는 가계부채는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이다. 청년들은 반반한 일자리가 없어 만년 백수로 전락하고 있고 회사에서 밀려난 중·장년층도 재취업 기회를 잡지 못해 아우성이다. 우리 경제의 '실핏줄'인 자영업도 날씨만큼이나 추위를 타고 있다.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2.8%로 전망하고 있다. 3년 연속 2%대 성장이 유력시된다.

여기다 대통령 탄핵심판과 대선이라는 복병이 기다리고 있다. 경제의 최대 적은 불확실성. 무엇 하나 확실한 게 없으니 소비와 투자가 일어나지 않는 건 당연지사. 먹고사는 문제가 여의치 않다 보니 생계형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떡국용 떡, 분유, 화장지, 자전거 등을 훔쳐 가는 '장발장'이 곳곳에서 출몰하고 있는 것.

백성은 항심이 없으면 방탕·편벽·사악·사치하게 되는 등
하지 못할 게 없어진다. 그리하여 죄에 빠지게 된 후
그에게 형벌을 가하는 건 그물질해 잡는 것이다


<맹자> '양혜왕장구상'의 한 구절.

제선왕(齊宣王)이 말했다. "원컨대 선생께서 내 뜻을 도와 나를 밝게 가르쳐 주십시오. 내가 비록 불민하나 이를 시험해 볼까 합니다."

맹자가 대답했다. "일정한 생업(恒産·항산)이 없으면서도 한결같은 마음(恒心·항심)이 있는 것은 오직 선비만이 그럴 수 있습니다. 백성들은 일정한 생업이 없으면 한결같은 마음도 없습니다. 만일 한결같은 마음이 없게 되면 방탕하고 편벽되며 사악하고 사치하는(방벽사치) 등 하지 못할 것이 없게 됩니다. 그렇게 되어 죄에 빠지게 된 후에 그에게 형벌을 가한다면, 이것은 백성들을 그물질해(罔·망) 잡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먹고사는 문제야말로 왕도정치의 알파요 오메가라는 소리다. 항심(윤리나 도덕)은 사람들이 지켜야 할 요소이지만 민생의 안정 없이 이것만 강조한다면 통치자로서 자격 미달이라는 것이다. 박근혜정부는 '법과 원칙'을 앵무새처럼 외쳐 왔다. 세상이 법과 원칙대로만 된다면야 굳이 정치가 필요할까. 정치는 그 이상의 무엇이어야 한다. 물론 생계형이라고 해도 범죄 자체는 용납될 수 없다. 하지만 범행에 이르게 된 저간의 형편을 살펴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 주는 건 정치의 역할이 아닐까. 차기 대권을 꿈꾸는 '잠룡'들이 새겨들을 만하다.

그럼 항산의 구체적 내용은 뭘까? 맹자의 '훈시'가 이어진다. "이런 까닭에 명철한 임금은 백성들이 먹고살 방도를 마련해, 반드시 위로는 족히 부모를 섬길 수 있게 하고 아래로는 처자식을 먹일 수 있게 한 연후에 백성들이 착한 길로 나아가게 하니, 백성들이 따르기가 쉽습니다." 논설위원 hoh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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