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올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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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장수 부경대 경제학부 교수

지난 연말, 오랜만에 감동적인 영화를 봤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사실 사전에 줄거리는 물론이고 제목도 모르고, 딸애가 예약하면서 좀 슬프지만 가족이 함께 봐야 할 영화라고 해서 따라가서 본 영화이다. 요즘 나라 돌아가는 것이 정상적이지 않고, 도대체 우리에게 대통령과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자괴감으로 속상했던 터다. 모처럼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스트레스 해소 영화를 보고 싶었는데, 조금은 슬픈 영화라고 하니 기분이 썩 내키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영화의 스토리에 몰입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노동경제학이라는 나의 전공 때문이겠지만 너무나 익숙한 장면들, 즉 실업자의 모습, 실업보험금 수급 자격을 받으러 가는 고용센터, 영국의 복지 서비스 전달 장면들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몰입도를 극대화시킨 것은 영화의 내용이 지금 우리의 상황과 너무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주인공
벽서로 보수당 정권에 항변하지만
우리는 촛불로 대통령 권한 정지시켜

정의로운 민주·복지 국가 만들려면
국민을 진정 섬기는 대통령 뽑아야
새 역사는 전적으로 우리 손에 달려


주인공 다니엘은 평생을 성실하게 목수로 살아오다 심장병으로 인해 계속 일을 할 수 없어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고용센터에 찾아간다. 그러나 고용센터 직원들의 경직된 관료주의에 계속 부딪친다. 다니엘은 결국 고용센터 건물 벽에 정부의 문제점, 보수당 복지정책의 문제점을 스프레이로 적는다. 정상적인 절차로서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닫고 최후 수단으로 벽에 항의의 내용을 적고 소리를 지르자 주변 시민들이 환호한다.

국민에 의해 국가 경영의 권한을 위임받았다는 점에서 대통령은 우리의 정치·경제·사회·문화 전 영역에 걸쳐 엄청난 권한을 지닌다. 대통령이 수행하는 정책에 대한 반대 의견을 내더라도 '국민의 이름으로' 밀어붙이면 막아 낼 방법이 거의 없다. 특히 소통과는 담을 쌓아 놓고 지냈던 박근혜 대통령과 같은 경우에 비판과 반대 의견이 반영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반영은커녕 블랙리스트에 들어갈 가능성만 높아질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야당 후보를 지지했거나 세월호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성명서에 서명했다는 이유 등으로 만들어진 문화계 블랙리스트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만 존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학총장 선임 과정을 보면 교수 블랙리스트가 존재했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정치적인 활동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살아 왔던 나 또한 블랙리스트에 들어갔던 문화계 인사와 유사한 이유로 이번 정부에서 일정한 피해를 본 경험이 있다. 1970년대 유신시대에나 있었던 구시대 산물이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 정권의 통치철학에 의해 부활한 것이다.

수백 년에 걸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일이 작금에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철권 대통령의 권한을 정지시킨 탄핵이 진행되고 있다.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인원 천만 명의 '다니엘 블레이크'가 모여 이 어려운 일을 해낸 것이다. 한 명의 다니엘 블레이크는 스프레이로 벽에 요구 사항을 적는 것으로 항의했지만, 천만 명의 우리 국민들은 촛불집회로 철권 대통령의 권한을 정지시켜 버렸다.

하지만 정상적인 국가를 만드는 일, 블랙리스트가 없는 지속가능한 민주주의 사회를 만드는 일, 우리 자식들에게 정의로운 사회를 넘겨주는 일이 실현되려면 우리가 마무리해야 할 일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지인들이 아니라 국민을 진정으로 섬기는 대통령, 텔레비전에 얼굴이 나오면 다수 시청자들의 기분이 좋아지는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그리하여 국민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정부를 만들어야 하고, 정치권력과 재벌들 간의 유착을 금지하여 소수에게 권력과 부가 집중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아이를 안전하게 키울 수 있어야 하고, 학교 생활이 즐겁도록 해야 한다. 청년들에게 더 좋고 더 많은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고 기꺼이 중소기업에서 일하거나 자영업자로 살 수 있도록 대우해야 한다. 행복한 노후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함은 물론이다.

지난해가 한국 사회를 정상적으로 만들기 시작한 단초의 시기였다면 올해는 한국 현대사에서 새로운 역사를 만든 원년으로 기록되어야 한다.

2017년, 우리 사회가 이륙을 해서 역사적 전환점을 만들어 낼 수 있는가는 전적으로 국민의 손에 달려 있다. 우리는 함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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