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떠나보내며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지난달, 광화문 촛불 집회에서 '타는 목마름으로'를 합창한 적이 있다. 촛불 집회에 처음으로 100만 명이 운집했던 그날, KTX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하고 보니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광화문광장으로 향했다. 그때 무대에 오른 가수가 '타는 목마름으로'를 불렀고, 사람들도 하나둘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근데, 김지하는 어디로 갔지?" 합창이 끝난 후 동행한 선배 언니가 자조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나 역시 노래를 부르는 동안 만감이 교차했다.

우리 힘으로 민주주의의 가치
지키지 못한다면
언제라도 또 다른 독재 등장

지금은 한 사람의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너와 나의 힘·지혜 필요

민주주의의 가치 믿는 이들이여
천천히 끈기 있게 걸어갑시다

그날 우리는 시인의 최근 행보에 대해서 서로 입을 다물었다. 어쨌거나 그는 암울한 독재정권 시절, 수많은 청춘에게 '신새벽 뒷골목'에서나마 '숨죽여 흐느끼며' '민주주의여 만세'를 외칠 수 있는 용기를 준 시인이었으니까.

선배와 다시 연락한 건, 문청시절 우리가 경탄했던 또 다른 문인, 이문열 소설가의 소식을 접하고서였다. 지난 2일, 조선일보에 실린 그의 글은 참담한 내용이었다.

"4500만 중에 3%가 한군데 모여 있다고, 추운 겨울밤에 밤새 몰려다녔다고 바로 탄핵이나 하야가 '국민의 뜻'이라고 대치할 수 있는가."

놀랍게도 그는 촛불 집회를 '아리랑 축전'의 집단 체조에 빗대고, 1분 소등 퍼포먼스에서 '으스스한 느낌'이 든 사람이 있다고 언급함으로써 촛불 집회를 악의적으로 호도하고 있었다. 또한, 이 모든 민심이 '야당의 주장과 매스컴의 호들갑'이 만들어 낸 '논리'라고 주장했다.

아무래도 글의 속뜻이 더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거듭 읽어 봐도 고희를 앞둔 소설가의 현실 인식은 실망스러웠고 교조적이었다.

지난 1987년, 그는 중편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이제는 한국문학의 고전이 된 이 소설은 초등학교 5학년 교실을 배경으로 반장 엄석대를 등장시켜서 권력의 유지와 붕괴 과정을 섬뜩하게 묘사하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이 소설의 문학적 성취는 단순한 선/악 구도나 알레고리의 도식성을 뛰어넘는 어떤 지점에 놓여 있다. 작가가 견지했던 그 지점을, 양면가치의 탐색 혹은 가치 중립적 세계관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그 시절의 이문열 소설가는 자신이 '초월적 사인성(私人性)'이라고 불렀던 균형감각, 즉 현상을 외부와 내부에서 동시에 바라보는 시각을 갖고 있었다.

소설 속에서 엄석대의 독재체제가 붕괴한 건, 반 아이들의 자발적인 '혁명' 때문이 아니었다. 민주주의는 반 아이들의 축적된 노력과 희생에 의해서가 아니라, 갑작스럽게 나타난 외부세력(새 담임선생)에 의해 일방적으로 주어졌다. 누구보다도 주인공 한병태가 이 '기묘한 혁명'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지 못한다면 언제라도 또 다른 독재 세력이 등장할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엄석대의 생애를 회고하는 한병태의 복잡 미묘한 관점이야말로 이 소설의 매력 포인트이자 위험요소일 것이다. 성인이 된 엄석대가 지금도 여전히 은밀한 곳에서 권력을 쥐고 있어서 '내 재능의 일부만 바치면' 모든 것을 해 줄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이율배반적인 가치관. 한병태의 이 양가적 태도야말로, 오늘날 획일성의 세계로 추락해 버린 이문열 소설가의 행보를 예시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한 사람의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너와 나의 힘과 지혜가 필요한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들을 떠나보내며, 민주주의의 가치를 믿는 모든 이에게 천천히, 끈기 있게, 걸어가자고 얘기하고 싶다.

황은덕

소설가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