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신춘문예-시] 허공에서 더 깊어지는 추위 / 김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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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류지혜 기자 birdy@busan.com

세 길 높이 배관 위

긴 칼 휘두르는 단단한 추위와 맞선다



방패는,

작업복 한 장의 두께



빈곤의 길이를 덮을 수 없는 주머니 속에서

길 없는 길을 찾는 추위에 쩍쩍 묻어나는 살점

더 먼 변두리의 울음소리를 막아보려

등돌린 세상처럼 냉골인 둥근 관을 온몸으로 데운다



두려움의 크기 따라 느리게

혹은, 더 느리게

허공을 차는 발바닥의 양력揚力으로 기는 자벌레



수평으로 떠 있는 몸이 공중을 써는 동안

바람은,

밀도 낮은 곳만 파고드는 야비한 마름



풍경風磬이 될 수 없는 공구들 부딪치는 소리

눈앞에 튀어 올랐던 땅의 단내가 목구멍을 채우는,

숨죽였던 모골이 축축한 닭의 볏이 될 때마다

날개 없는 포유류가 새가 된 적 없다는 걸

한 발 느리게 깨닫는다



떨어져 나갔다 다시 매달린 간肝으로부터

소름의 갈기가 잦아드는 한숨



자꾸만 밀어내는 세상의 복판을 자주 헛짚어

복부 근육으로 변두리를 붙잡고 살아내야 한다는 것,



허공을 기는 힘이 연소될 때마다

그나마 조금 환해지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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