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키친 캐비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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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제7대 앤드루 잭슨 대통령 시절인 1830~31년 정치권을 뒤흔든 스캔들이 있었다. 존 이튼 국방장관이 페기 오닐이라는 젊은 미망인과 결혼을 했다. 두 사람은 페기 오닐의 남편이 살아 있을 때부터 불륜 관계로 의심을 받아왔는데, 남편이 죽자마자 곧바로 결혼을 한 것. 그러자 존 캘훈 부통령의 부인 등 대부분의 정부 각료 부인들이 도덕적 기준에 맞지 않는다며 국방장관의 부인을 각료 부인 그룹에서 배척했다. 이 사건에서 잭슨 대통령은 국방장관의 편을 들었는데, 결국 대통령파와 부통령파로 나뉜 권력투쟁으로 이어졌고 양쪽 각료 대부분이 동시에 사임하는 사태로 확대됐다. 각료 부인들의 다툼에서 비롯됐다고 해 '페티코트(속치마) 스캔들'이라 불린다.

당시 잭슨 대통령은 부통령을 비롯한 각료 대부분이 반(反)대통령파로 돌아서 공식 내각을 통한 국정 운영이 어려워지자 측근들과 따로 모여 국정을 논의했다. 이에 반대통령파가 잭슨 대통령을 비난하며 공식 내각을 지칭하는 '응접실 내각(Parlor cabinet)'과 대비해 측근으로 이루어진 비공식 내각을 비하하며 부른 명칭이 '부엌 내각', 즉 '키친 캐비닛(Kitchen Cabinet)'이다.

이후 이 용어는 미국에서 대통령의 식사에 초청받아 담소를 나누며 격의 없이 국정에 조언을 하는 지인을 칭하는 말이 됐다. 키친 캐비닛은 어느 정부에나 존재해 왔지만 최근 미국에서는 이를 아예 공식화해 제도권 안으로 편입시키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2001년 처음 키친 캐비닛 명단을 공개했고, 오바마 대통령의 경우 유명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를 비롯한 100여 명의 키친 캐비닛을 발표한 데 이어 일반 시민도 국정 운영에 참여시킨다는 취지에서 키친 캐비닛에 포함시켰다. 이런 키친 캐비닛은 대통령과 사적 이해나 정치 관계로 얽혀 있지 않아 순수하게 여론을 전달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심판 답변서에 '키친 캐비닛'이란 말이 등장했다. 국정 농단의 몸통인, 비선 실세로 지목되고 있는 최순실 씨를 키친 캐비닛과 같은 취지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키친 캐비닛이란 말의 유래와 그 말이 현재 미국에서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대통령과의 친분 관계를 이용해 사익을 챙긴 최 씨를 키친 캐비닛이라 부르는 것은 지나친 견강부회라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유명준 논설위원 joon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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