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목 부산대 명예교수 "삶이란 죽음 향해 달리는 머나먼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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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시간은 책장 넘기는 소리였고, 삶의 공간은 책과 대화하는 서재와 내 생명의 기를 살려주는 자연이었습니다."

한평생 철학 연구에 몸담아 온 박선목(80) 부산대 명예교수가 15년 만에 두 번째 수필집 <저승길을 물어서 간다>(산지니)를 펴냈다.

15년 만에 두 번째 수필집 발간
동인지 '윤좌' 12년째 활동도
남미 일주 포함 63개국 여행


박 교수에게 삶의 한 축은 '글쓰기'다. 군대 생활을 빼고는 학교를 벗어난 적이 없다는 노학자는 군대 시절 꼬박꼬박 써 온 일기를 시작으로 문학의 꿈을 키웠다고 했다. 하지만 철학적 사고를 토대로 한 문학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결국 철학도의 길을 걷게 됐다. 청마 유치환, 요산 김정한, 향파 이주홍 등 대가들이 주축이 돼 만든 동인지 '윤좌' 동인이기도 한 박 교수는 "2004년부터 활동해 온 윤좌는 일종의 기댈 언덕"이라며 "살아있는 동안은 계속 기대고 싶다"고 말했다.

박 교수 삶의 또 다른 축은 '여행'. 1973년 독일 유학 시절 여행을 시작으로 40년 넘게 박 교수가 발자국을 남긴 나라는 63개국에 이른다.

"여행이야말로 지리, 기후, 민속, 문화, 생활 등을 한꺼번에 경험할 수 있는 종합체험 세트"라고 한 박 교수는 가장 인상 깊은 나라로 인도를 꼽았다.

박 교수는 "인도 공항에서 한 군인이 맨발을 한 채 총을 옆에 두고 누워 자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30년 후 다시 인도를 찾았는데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런 모습에 매료돼 인도 땅을 세 번이나 밟았다"고 웃음 지었다. 한 달여간 지인들과 남미 전역을 돌아다닌 것도 잊을 수 없다는 박 교수는 "친구 5명과 승용차로 일주를 했는데 삼천리 꽃동산이었다"며 "어디론가 떠나는 것만으로도 삶이 좀 더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신 시절 학생 시위를 막기 위해 교정 곳곳에서 보초를 서야 했을 때 교수로서 자괴감을 느꼈다는 박 교수는 최근 촛불 집회를 높이 평가했다. 박 교수는 "강력한 독재자는 사회를 빨리 정화시키지만 '독재'로 흐를 위험성이 있다. 그러나, 질서정연한 시민의식은 느리지만 바람직한 혁명을 이끌어낸다"며 "시민의 힘으로 부정부패를 막고자 한 이번 집회를 통해 민주화가 진일보했다"고 평가했다.

책 제목에 언급된 저승길에 대해선 "책 제목을 정할 때 많은 고민을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이었다"며 "삶 자체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인 만큼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역설적인 표현을 찾았다"고 말했다.

노년층이 주로 책을 읽을 것 같다고 웃음 짓던 박 교수. 그는 "노인들은 대개 죽음을 의식하지만 죽음을 직접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죽음을 앞두고 어떤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사진=김병집 기자 b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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