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의 해변을 가다] 1.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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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마저 잠든 수평선

시아누크빌 해변은 10㎞가 넘는 해안선을 따라서 이어진다. 해변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담은 바다 모습.

올겨울은 촛불이 골목골목 길을 밝혀주는 계절이 되었다. 촛불은 불어오는 바람에 꺼질 듯 꺼지지 않고 바람결을 따라 타오르면서 불꽃이 된다. 그 불꽃이 어둠의 하늘을 밝히면 온 누리는 횃불의 함성으로 뒤덮인다. '이것이 마지막이라 해도/눈물을 보이진 않겠어./살아갈 날들 중에 언젠가/다시 만날 날이 반드시 올 테니./그 때까지 기다려 줄래'(록 그룹 델리스파이스의 노래 '시아누크빌'에서.

그날을 위하여, 횃불의 함성으로 새봄을 맞이하기 위하여, 바람마저 잠들어 '새들도 찾지 않는 끝없는 수평선'으로 가서 잠시 쉬었다가 오자. 캄보디아 시아누크빌로 가자.

황금사자상이 여행자를 맞는 도시
남북으로 이어진 10㎞ 해안선
안식을 구하든 새 삶의 에너지를 찾든
그 무엇을 해도 당신의 자유

시아누크빌은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국부 시아누크 왕의 이름을 빌려서 크메르어 콤폼송에서 바뀌었다. 도시의 입구로 들어가면 두 마리의 황금사자상이 여행자를 맞이하면서 해변으로 안내한다. 해변은 북쪽 끝 빅토리 비치와 남쪽 끝 오트레 비치 사이 거의 10㎞가 넘는 해안선을 따라서 이어진다.

섬으로 가는 선착장의 모습.
빅토리 비치가 배낭여행자들이 장기간 머무는 곳이자 근처 섬으로 가는 선착장이라면, 오뜨레스 비치는 해양레저시설로 조성되어 가족여행자가 즐겨 찾는 곳이다. 오츠띠얼 비치가 현지 서민이 야자수와 함께 4km 정도 길게 늘어선 백사장에서 가족 나들이나 단체행사를 하는 곳이라면, 하와이 비치는 캄보디아 권력자나 부자들이 휴식을 취하려고 오는 아담하고 조용한 곳이다.

세렌디비티 비치가 외국인 관광객이 즐겨 찾는 곳으로 노천 레스토랑과 카페 등에서 라이브 음악과 칵테일로 밤바다를 즐길 수 있는 곳이라면, 인디펜던스 비치는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졌지만 찾는 사람이 거의 없고 여유롭게 일광욕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소카 비치는 다른 곳과 달리, 같은 이름의 리조트에서 운영하는 사유지인 휴양지이다. 
시아누크빌 여행자 거리의 밤.
이 가운데 세렌디비티 비치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여행자 거리가 있다. 거의 100m도 되지 않는 짧은 거리이지만 여행자를 위한 숙박시설과 음식점, 펍과 노점, 영화관과 마사지 가게가 골고루 갖추어져 있다. 서너 개가 있는 영화관에는 여행자가 직접 영화, 관람 시간, 방을 골라서 가면 된다. 먹을거리를 사거나 라운지에 있는 책을 골라서 들어가기도 한다. 그곳에서는 정해진 시간만큼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무엇을 해도 상관없다.

영화가 DVD로 상영되기 때문에 운이 좋으면 미개봉작과 그 원작 작품을 함께 볼 수 있다. 2009년 독일에서 만들어 2012년 한국에서 개봉된 영화 '스롤란 마이러브'를 2011년에 볼 수 있었던 것도 행운에 속했다. 그 영화는 독일 청년 여행객과 캄보디아 여성 간의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남녀 간의 사랑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대사는 여전히 아름답다. 그 대사는 세 가지 물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언제 끝이 날지 모르는 동굴 속에 오직 촛불만을 의지한 채 앞으로 나아가는 당신은 몇 개의 초를 가져갈 것인가? 동굴을 걷는 동안 발에 무언가 걸린 당신은 뒤를 돌아볼까? 앞으로 나아갈까? 동굴을 빠져나온 당신은 어떤 동물과 마주하게 될까?' 
조용한 해변의 풍경.
촛불을 여러 개 가져가서 불을 환하게 밝힐까. 아니면 두 개만 가져가서 당신과 나만의 불을 밝힐까. 동굴을 걸어가면서 뒤돌아볼까. 아니면 앞만 보고 걸을까. 걷다가 뒤돌아보면 사랑하는 당신의 과거를 볼 수 있을까. 과거의 당신이 사랑의 걸림돌이 될까. 그렇든 말든 사랑은 미래로 나아가는 것일까. 사랑의 고뇌를 앓았던 동굴을 빠져나오면 당신과 나는 사랑을 계속할 수 있을까. 아니면 당신과 나는 새로운 사랑을 찾아서 갈까. 시아누크 해변은 여행자들이 사랑이 무엇인지에 관한 고뇌를 계속하고 해답을 찾을 수 있는 안식처일지도 모른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그 답을 할 수 있을지도….

그 거리가 끝날 때쯤에는 한 평 크기도 되지 않는 가게가 있다. 그 가게에는 대부분 은퇴한 서양 노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컴퓨터 음악 반주에 맞추어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왁자지껄 떠들고 있다. 그 가게는 젊은 날의 사랑과 삶, 고통의 흔적이 백발로 바래진 서구 노인들의 안식처인 것 같다.

시아누크빌은 여행자들에게 때로는 새로운 삶의 출발지가 되기도 한다. 여행자 거리에서 핫도그와 토스트를 파는 독일 친구는 여행으로 와서 삶의 뿌리를 내린 지 10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고 했다. 그는 적자생존의 경쟁이 싫어서, 아등바등 살지 않아도 되는 이곳에 정착했다고 한다. 여기선 무너진 폐가이든 야자수 그늘이든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도 있고, 끼니도 거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고 말을 이었다.

글·사진=민병욱 교수 bmw2600@hanmail.net

여행팁

캄보디아 비자는 주한 캄보디아 대사관에서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현지에 도착해 공항에서 30일 유효기간의 도착비자를 받는다. 시아누크빌로 가는 가장 흔한 방법은 씨엠립(앙코르 와트)이나 프놈펜에서 비행기나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장기 배낭여행자들은 불편하지만 태국 국경 핫렉에서 캄보디아 참엠을 통해 오기도 한다.
시나누크빌 도시 전경.
시아누크빌은 캄보디아 관광 여건 때문에 여행의 출발지로 삼기는 어렵고 중간 경유지밖에 될 수 없다. 하지만 체류 시간만 넉넉하다면 시아누크빌에서 둘러볼 곳은 적지 않다. 시내에 있는 프사르 마켓은 전통 해물요리나 해산물이 넘쳐나는 재래시장으로 너무나 착은 가격을 받는 곳이다. 시내에서 조금 먼 끄발차이 폭포는 계단식으로 되어 장관을 연출한다. 더 멀리 있는 보코산 국립공원은 2004년에 개봉한 한국 전쟁 공포 영화 '알포인트'의 촬영지이다.

시아누크빌에서 착한 여행자에게 꼭 권유하는 장소가 두 곳 있다. 첫 번째는 극빈 소년·소녀들을 성매매로부터 치유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캄보디아 어린이보호센터다. 두 번째는 밤부 아일랜드다. 여기는 식수는 육지에서 가져오지만 전기는 물론 문명의 혜택을 전혀 받지 않아 밤하늘의 별빛으로 환하게 빛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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