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부산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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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소설에서 최고 지명은 '무진'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안개 나루'는 오리무중의 안갯속에 처해 있는 시대와 인간을 꿰는 지명 설정이었다. 그러나 그 무진은 지도에 없는 창작이었다. 더 높은 상징에 이르려고 하면 특정 장소를 들먹이는 것을 피해야 한다. 그래서 이전 문학 작품이나 영화에서는 이를테면 부산을 'B시'라고 엉큼하게 뭉개놨던 것이다. 이걸 넘어선 이가 <더블린 사람들>을 쓴 아일랜드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이고, <뒷기미나루>를 쓴 한국 소설가 요산 김정한이었다. 그들은 예컨대 '부산'을 '부산'이라고 부른 이들이다. 예술 작품도 진화하는 것이라면, 부산을 부산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상징보다는 구체적 실감에 육박하겠다는 것이다. 영화 <국제시장>이 그렇게 했던가. 보편은 똑같다. 범우주적인 지고지순한 사랑, 인간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는 휴머니즘 등. 하지만 보편은 구체적인 것을 통해 실현될 수밖에 없다. 똑같은 사랑 같아 보이지만 개똥이의 사랑과 소똥이의 사랑은 전혀 다르고 그 자체로 의미가 충분한 것이다. 그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것을 옹호하는 것이 예술이다.

여기서 이른바 '부산영화'를 만나게 된다. 부산이 장소 배경이 되고, 부산 사람들의 삶이 나오는 영화다. 부산에서 '부산'을 살 수밖에 없는 '우연한 필연' 속에 놓여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근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부산발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부산 출신 감독들이 만든 영화다. '부산영화'와 '부산 감독이 만든 영화'는 다르다. 다른 데 사는 사람이 부산의 삶과 장소를 더 정확하게 이야기한다면 그것이 '부산영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부산영상위원회가 '부산영화를 만나다'라는 부산영화 기획전을 16일 하루 연다고 한다. 여기서 '부산영화'는 제작도 부산에서 하고, 감독도 부산 사람이어서 붙은 이름이다. 5편의 영화를 상영하는데 그중 영화 <영도>는 능청을 떨고 있다. 영도는 연쇄 살인마의 아들인 주인공 이름인데 영화에서는 영도대교 영도등대 등이 나온다고 한다. 배경과 주인공 이름을 겹쳐 '부산영화' 표를 내고 있다. 무엇을 '부산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배경, 감독, 이야기 등 다양한 측면과 '부산영화'라는 이름은 연계돼 있을 것이다. 무엇이 '부산'인가. 이것은 다할 수 없는 창조적인 질문이다. 최학림 논설위원 th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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