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시론] 국민은 헌법재판소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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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정욱 변호사

최근에 수임한 사건의 내용이다. 남편이 사망한 지 10년 이상 지났고, 남편이 남겨준 유일한 재산인 아파트 한 채를 상속받아 아내와 아들 형제가 생활해 왔다. 그런데 고인이 된 남편이 생전에 재건축조합의 이사로 일을 하면서 연대보증을 서 준 것이 문제가 되었다. 채권자인 건설회사는 보증채무도 상속되는 것이라며 상속인들을 상대로 10억 원이 넘는 소송을 제기했다. 과거라면 난감한 상황이었고 보증채무의 굴레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이 될 수 있었다. 상속 당시 상속재산과 부채를 비교해 부채가 더 많을 경우 민법은 상속의 포기와 한정승인제도를 마련하고 있었지만, 과거 민법은 그 행사기간을 '상속 개시일로부터 3개월 내'로 제한하고 있었다. 의뢰인의 경우 남편의 사망일로부터 3개월의 기간이 훨씬 지나 버렸기에 과거 민법 규정에 의한다면 남편의 연대보증채무를 상속받을 수밖에 없었지만, 민법의 개정으로 인해 '채무의 초과 사실을 안 때로부터 3개월 내'에 상속의 한정승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의뢰인에게 일단 상속의 한정승인 신청을 제안했다. 최악의 경우라도 남편으로부터 상속받은 아파트 한 채만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과거에는 동성동본 간에는 결혼을 할 수 없었다. 민법에 동성동본금혼 규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해 김씨만 해도 400만 명이 넘는 상황에서 동성동본금혼은 너무도 불합리한 규정이었다. 결혼은 했지만 혼인신고는 하지 못하고, 태어난 자식도 혼외자로 신고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199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그런데 민법의 개정으로 불합리하고 전근대적인 동성동본금혼 제도는 폐지되었다.

1987년 개헌 때 헌법재판소 설치
불합리한 법률 위헌결정 등 역할

탄핵심판은 초헌법적 사태 없이
국정 공백 해결할 유일한 수단

헌법적 가치 수호 위해 노력하는
헌법재판소 존재 이유 증명할 때


김동인의 소설 '발가락이 닮았다'를 보면 생식 능력을 잃은 한 남성이 결혼을 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아들을 얻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아버지와 아들이 전혀 닮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자, '아들과 발가락이 닮았다'고 합리화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소설과 같은 상황에서 아들과의 법률상 혈연관계를 단절시킬 수 있는 유일한 소송 형태가 '친생부인의 소'이다. 과거 이 소송은 '태어난 날로부터 1년 내'에 제기해야 했기에 첫돌이 지난 후 혈액형 검사 등을 통해 친생자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고 해도 친생자 관계를 단절시킬 수 있는 수단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민법 개정으로 '사유가 있음을 안 날로부터 2년 내'에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게 되었다.

위와 같이 불합리하고 전근대적인 민법 규정들이 개정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헌법재판소의 존재와 역할 덕분이다. 법률 규정에 대한 위헌결정, 즉 '법률 규정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헌법재판소가 결정함으로써 헌법에 맞도록 민법 개정이 이루어진 것이다.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로 대통령 직선제 도입을 전제로 한 헌법 개정이 있었다.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의 여야 합의 헌법 개정 과정에서 헌법재판소가 헌법상 국가기관으로 설치되었고, '법률의 위헌 여부 심판,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 국가기관 간의 권한쟁의 심판, 헌법소원 심판'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동안의 헌법재판소 역할은 눈이 부실 정도다. 민법에 잔재하고 있었던 수많은 전근대적이고 불합리한 규정들이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을 통해 개정되었다. 국가기관의 과세편의에 치중되어 있었던 조세관련법의 수많은 규정들도 위헌결정을 통해 개정되었으며, 남녀 간, 지역 간, 계층 간에 불평등을 조장하였던 규정들도 개정·폐지되었다.

헌법재판소의 존재로 인해 이제는 법률의 제정이나 개정 단계에서부터 위헌 여부에 대한 고려와 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권위적인 정부의 편의를 우선 고려해서 법률의 제정 및 개정이 진행되었지만, 이제는 국민의 인권과 헌법적 가치가 최우선적 가치가 된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다시 한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유례없는 국정 농단과 국정 공백 사태를 해결해 줄 마지막 수단인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절차가 개시되었다. 국민의 노력으로 국회의 탄핵소추의결이 있었고, 대통령의 자진사퇴가 없는 상황에서 물리력을 동원한 초헌법적인 사태를 초래하지 않고 대한민국의 현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탄핵심판 절차이고, 탄핵심판 절차의 담당기관이 헌법재판소이다.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노력하였던 헌법재판소의 존재 이유를 증명할 기회이다. 헌법재판소에서는 대다수 국민들의 일치된 열망을 충분히 반영해서 올바른 결정을 내려 줄 것이라고 국민들은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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