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칩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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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9일 오후 7시 3분. 국회 탄핵소추의결서가 청와대에 전달되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의 모든 권한이 정지됐다. 대통령이라는 신분은 유지하지만 국가 원수 및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헌법상 권한을 행사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탄핵소추 의결 이후에도 박 대통령은 대통령 신분을 유지하기 때문에 청와대 관저에 계속 머물게 된다. 법적으로 제한이 있는 것이 아니니 외출은 자유롭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같은 청와대 경내라도 본관이나 비서동에 출입하면 대통령 권한 행사로 비칠 수 있기 때문에 행동 반경은 사실상 관저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이 같은 상황을 언론은 '관저 칩거' 또는 '관저 유폐'라고 표현하고 있다.

한자 '칩(蟄)'은 벌레나 개구리 등이 땅속에 숨어 겨울잠을 자는 것을 가리키니, '칩거(蟄居)'란 겨울잠을 자는 동물처럼 집 안에만 틀어박혀 바깥 세상의 일에 관심을 끊고 있는 것을 뜻한다. 한자 '유(幽)'는 '멀고 깊고 어둡다'는 의미로, '유폐(幽閉)'는 아주 깊숙이 가두어 두는 것을 말한다. 칩거는 자의에 의한 것이지만 유폐는 타의에 의해 강제된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권한이 정지된 대통령의 상황은 감금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는 칩거로 볼 수 있지만 법적·정치적 행위가 제한된다는 점에서는 사실상 유폐에 가깝다.

2004년 헌정사상 첫 탄핵소추를 당했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헌재의 결정이 나기까지 63일간 청와대 관저에서 칩거 생활을 했다. 이 기간 외부에 드러난 그의 활동은 부인과의 수목원 나들이와 정부 관계자와의 비공식 만찬, 기자단과의 산행, 총선 투표 등 몇 차례의 비공식적인 일정에 그쳤고, 주로 독서와 산책, 주말 산행으로 '소일'을 했다는 것이 당시 청와대에 근무한 측근들의 설명이다. 그의 칩거는 헌재의 기각 결정으로 대통령직에 복귀하며 끝났다.

박 대통령은 지난 6일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지도부를 만난 자리에서 '탄핵이 가결되면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탄핵소추 가결 후 첫 휴일인 11일에는 관저에 머물며 휴식과 독서로 하루를 보냈다고 한다. 얼마가 될지 모르는 박 대통령의 청와대 관저 칩거 생활이 어떤 활동으로 채워질지, 또 어떻게 결말이 날지 지켜볼 일이다. 유명준 논설위원 jo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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